“옛날의 제왕은 악사를 모두 장님으로 삼아 현송(絃誦:거문고를 타며 시를 읊음)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1431년 박연이 시각장애인 악공의 처우 개선을 위해 세종 앞에서 호소한 말이다. 이듬해 1월 세종은 박연이 제시한 사항을 모두 그대로 따르도록 지시했다.
장애인을 자립 가능한 사회 구성원으로 본, 대단히 앞서간 장애인 인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장애인은 능력에 맞는 직업에 종사하고 관직을 맡을 수 있었고, 높은 벼슬에도 오를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많은 장애인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즉시 취업할 수 있는 직장 찾기는 쉽지가 않다. 장애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의 뒤편에는 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 편견이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84%였다.
비장애인은 장애를 '나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장애인 규모는 등록된 장애인만 255만명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90%는 질병·사고 등 후천성 요인으로 장애인이 된 경우다. 누구나 어느 순간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놓일 수 있다.
그럼에도 '장애인은 일할 능력이 부족하다' '일할 수 있는 마땅한 직무가 없다' '장애인을 고용하면 다른 직원에게 부담이 된다'는 편견이 우리 사회에 여전하다. 이 같은 편견으로 말미암아 장애인이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러한 우려와 달리 많은 장애인이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주어진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호텔에서 침대의 청결을 유지하며, 편의점에서 식품을 진열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팜 운영, 소프트웨어(SW)·웹페이지 오류 검증, 티 마스터 등 정보기술(IT)과 서비스 직종으로도 직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장애인 일자리 확대의 출발점으로 보고 지난해 5월부터 모든 사업장에서 연 1회, 1시간 이상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실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올해부터는 중소 사업장의 경우 무료로 강사를 지원한다. 현장에서 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지속해서 관심을 기울여서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낯설다. 장애인과 일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매년 실시하는 인식 개선 교육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기회가 좀 더 많아진다면 마음의 벽은 조금씩 허물어질 것이다.
어느덧 꽃샘 추위가 지나가고 바야흐로 봄이 완연하다. 4월은 '장애인 고용촉진 강조기간'이기도 하다. “장애는 극복되거나 재활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장애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마음이 필요하다.
600년 전 우리 선조가 그리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장애인이 일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사회 일원으로서 당당히 자리매김 하기를 바란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 seojeo@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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