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 무색해진 '미세먼지 추경'…재원규모·실효성 떨어질 우려

취지 무색해진 '미세먼지 추경'…재원규모·실효성 떨어질 우려

정부의 '미세먼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경기 대응, 서민 생활 안정, 포항 지진, 동해안 산불 등 추경 사용처가 확대되며 미세먼지 저감에는 충분한 재원 투입이 어려워졌다. 정부 내에서도 단기간에 획기적인 미세먼지 저감 사업 발굴이 어렵고, 규모·리스크가 큰 사업은 사실상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경기 부진이 심화되고 강원도 산불 등 예상치 못한 재난이 발생하면서 추경 재원 투입 무게중심이 종전 '미세먼지 대응'에서 다른 분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당초 정부는 미세먼지가 국가재정법상 추경 편성 요건인 '사회재난'에 해당한다고 판단, 추경을 편성하기로 했다. 처음 추경 편성 논의에 불이 붙은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 '미세먼지 추경'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후 당·정·청은 미세먼지 추경 편성을 공식화 하면서 재원 투입 분야에 '경기 하방리스크 조기 차단' '서민 생활 안정'을 추가했다. 정부는 추가로 포항지진 피해 지원, 동해안 산불 피해 복구에도 추경을 활용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추경 편성을 위해 적자국채를 발행할 방침이다. 여유재원(세계잉여금, 한국은행 잉여금, 기금 여유자금)은 2조원에 못 미쳐 총 6조원 안팎으로 예상되는 추경을 충당하는데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추경 규모 확대에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당초 정부 취지와 달리 미세먼지 저감 사업에는 충분한 재정을 투입하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정부 각 부처는 미세먼지 저감 사업 발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3일부터 각 부처로부터 실링(지출한도), 제출기한 없이 미세먼지 사업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각 부처가 제안한 사업을 기재부가 검토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고, 추경안 국회 제출 일정(4월 25일 전후)도 얼마 남지 않아 대체로 이달 중순까지는 제안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불과 3주 만에 실효성 있는 사업을 발굴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신사업·대형사업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해 친환경차 보급, 도시숲 조성 등 기존 추진하는 사업을 확대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한 관계자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규모가 크거나 효과를 확신할 수 없으면 리스크를 짊어지면서까지 무리하게 추경 사업으로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기존 추진하던 사업을 보완·확대하는 사례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 편성이 공식화 되기 이전에도 각 부처가 나름대로 미세먼지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실효성 있는 사업 제안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미세먼지 저감보다는 경기 대응 차원에서 추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가 급락하는 상황”이라며 “미세먼지 저감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경기 대응 차원에서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