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군 신동읍에 위치한 한덕철광. 곳곳에 돌가루가 산처럼 쌓여있다. 그 사이로 철광석을 실은 컨베이어 벨트가 곳곳을 누빈다. 겉모습만 봐서는 보통 철광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지하 깊은 곳에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한층 높일 과학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원장 김두철) 지하실험연구단이 한덕철광 지하 수직갱에 조성하고 있는 '우주입자연구시설(ARF) 지하실험실'이다.
실험실은 철광 지하 최심부인 600m 지점에서 다시 옆으로 782m를 더 뚫고 들어간다. 지표를 기준으로 1100m 아래. 일대에서 가장 깊은 곳이다. 비슷한 성격의 '양양 지하실험실'보다 400m 깊다.
철광 꼭대기에 위치한 '인승용 케이지'를 타고 터널 굴착현장으로 내려갔다. 초속 4m 속도로 지하 600m 지점까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다. 엘리베이터는 해수면을 기준으로 35m 더 내려간 곳에 멈췄다. 소중호 지하실험연구단 박사가 덜컹이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귀띔해준 내용이다.
당장에라도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에 공기까지 텁텁하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뒤편으로는 '스킵' 설비가 굉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다. 지상으로 철광석을 옮기는 장비다. “철광에서는 세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설비입니다.” 소 박사가 미소를 지으며 궁금증을 풀어준다.
“우주입자를 연구하는 대부분 시설은 광산에 마련합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그래요. 광산은 이미 지하 깊은 곳까지 터널을 뚫어 놓은 곳이라 예산이 훨씬 덜 들이고도 더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갈 수 있어요.”
소 박사는 이렇게 깊은 지하에 ARF 연구실을 짓는 이유를 '차폐'라고 설명했다.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는 아주 포착하기 어려워 잡음이 되는 우주선을 최대한 차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깊으면 깊을수록 차폐 성능은 뛰어나다. 이곳은 양양 실험실보다 두 배 이상 깊어 잡음도 5~10배 더 좋게 개선할 수 있다.
스킵 설비 뒤편으로 펼쳐진 터널은 장관이었다. 10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 너비에 사람 키보다 두 배는 높은 것이 트럭도 쉽게 지나갈 수 있을 정도 위용을 보였다.
유시원 터널 건설사 부장은 “782m 가운데 100m 정도 뚫고 들어갔다”며 “굴착 속도가 빨라 연말에는 터널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알려준다.
IBS가 터널 끝에 조성할 계획인 지하실험실은 2000㎡ 규모로 양양 지하실험실보다 10배 크다. 실험실이 완공되면 암흑물질을 검출하는 '코사인 검출기'도 10배 큰 것을 들여놓을 수 있다. 그만큼 더 큰 규모 실험이 가능해진다.
소 박사는 “터널을 다 뚫은 후에도 실험실을 꾸미고 장비를 들여 놓으려면 아직 거쳐야 할 과정이 많이 남았지만, 조만간 세계적인 기초연구성과를 만들어 낼 실험실이 만들어진다”면서 “늦어도 2021년부터 이 곳에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을 것”고 말했다.
완성된 지하실험실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지하 600m까지 내려가 살펴본 지하 터널 현장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계 수준 우주입자 연구시설이 국내에도 건설된다. 바로 이 곳이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