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장편영화 6편을 만나다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Jeonju IFF)가 오는 5월 2일부터 11일까지, 10일간 CGV전주고사, 메가박스 전주(객사), 전주시네마타운,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전주 돔 일대에서 개최된다. 총 52개국 263편(장편 199편, 단편 64편)이 출품했으며 전 세계에서 최초로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 영화는 총 68편(장편 36편, 단편 32편)이다. 뉴트로 전주 섹션 상영작인 정형석 감독의 '앙상블'을 비롯해, 한국경쟁 섹션,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섹션에 출품한 한국 장편영화 6편을 미리 만나본다.

◇ '앙상블' 남녀 감정이입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정형석 감독의 '앙상블'은 세 연인의 따뜻하고 가슴 아린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이다. 조연출 세영은 가난한 연극 연출가이자 아이도 있는 영로를 좋아하는데, 영로는 세영에게 싫다고 말한다. 자신이 영로를 좋아하는데 영로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밀어붙인다. 세영 인지왜곡과 투사는 세영의 의식이 두 사람의 관계성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영 무의식이 선택한 것일 수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세영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일 수도 있다. 영로가 말하는 싫다는 의미는 어쩌면 진짜 싫은 게 아니라 자신이 없거나 여력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앙상블'은 남녀 주인공 중 누구에게 감정이입해 몰입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관객은 자신과 같은 입장에서 감정을 공유할 수도 있고, 역지사지할 수도 있다. 김승수, 서윤아, 유민규, 최배영, 이천희, 김정화가 출연한다.

영화 앙상블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앙상블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 '리메인' 표정변화 없이도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게 전달한 이지연

김민경 감독의 '리메인'은 화면이 삼분할 되는 장면이 여러 번 존재하는데, 세 명이 다른 공간에 남아있게 되는 이야기를 이미지로 암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초반 무용장면에서 무용수 손가락의 움직임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것처럼 인상적이다. 영화 속 춤과 음악은 정서적인 완충을 할 수도 정서의 증폭을 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넓히며 대사로 표현될 때보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더욱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게 만든다.

표정 변화를 강하게 표출하지 않으면서도, 지금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알 수 있게 전달한 이지연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한다기보다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배우가 아닌 무용수가 아닐까 착각할 수도 있다.

영화 리메인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리메인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 '굿바이 썸머'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보다, 자신을 더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

박영주 감독의 '굿바이 썸머'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현재(정제원 분)는 수민(김보라 분)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고, 친구인 지훈(이건우 분)에게 절교 선언을 듣는다. 병재(이도하 분)는 말할 때 발음도 이상한 전학생이지만 현재가 다시 중심을 찾게 만들어주는 인물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현재보다 자신을 더 먼저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저럴 수 있냐고 느끼는 관객이 있을 것인데, 실제로는 더한 사람도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평범한 대접을 받게 됐을 때 서운함과 서글픔 또한 '굿바이 썸머'는 주목하는데, 소외받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자신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영화 굿바이 썸머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굿바이 썸머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 '흩어진 밤' 내 삶을 내가 결정할 수 없을 때 닥친 시련과 난관

김솔, 이지형 감독의 '흩어진 밤'에서 수민(문승아 분)과 진호(최준우 분) 남매가 사는 집, 부모는 남매에게 곧 이혼할 것임을 선포한다. 엄마 윤희(김혜영 분)와 아빠 승원(임준호 분)은, 식구 네 명이 어떻게 살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보름가량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관찰자 입장의 카메라는, 깊숙이 들어가기 보다는 객관적 시야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현실적인 고민에 집중하게 만듦으로써 근본적인 것에 덜 집중하게 만드는 점을 간과할 수도 있다. '흩어진 밤'은 내 삶을 내가 결정할 수 없을 때 닥친 시련과 난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결정권이 없고, 자신의 생각에 대해 존중받지 못할 때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관객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영화 흩어진 밤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흩어진 밤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 '세트플레이' 영화보다는 현실 캐릭터, 감정이입과 공감의 충돌

문승욱 감독의 '세트플레이'는 김이설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성철(이재균 분)은 이중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자신보다 두 살 어린 기준(장유상 분)과 함께 세트플레이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주도적이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찌질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혼자 거동을 하지 못하는 아픈 형의 극진히 보살핀다. 여자친구인 유선(고민시 분)을 대할 때는 지고지순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단순, 명쾌하지 않고 복합적인 성철의 성격을 보면 영화적 캐릭터라기보다 현실 캐릭터로 느껴진다. 성철에게 감정이입한 관객의 마음 또한 복잡하고 불편해질 수 있는데, 감정이입했더라도 성철의 행동과 마음에 온전히 공감하지는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균의 뛰어난 연기력이 오히려 관객의 감정이입과 공감을 충돌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영화 세트플레이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세트플레이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이성한 감독의 고백서, 일기 같은 영화

이성한 감독의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에서 민재(김재선 분)는 낮에는 고등학교 교사이지만, 밤에는 거리에 나가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된 아이와 함께하는 선생님이다. 민재는 위태로운 아이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아이들에게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이야기를 들어줄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라는 영화 속 표현을 적용하면, 민재의 역할과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감독의 고백서, 일기 같은 영화라고 볼 수 있는데, 직접 관람하면 감독은 따뜻한 마음과 보살핌을 영화 속에 넣어주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속 민재는 감독의 모습이거나, 혹은 되고 싶은 존재라고 추정된다. 잘못된 선택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용기와 기회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은 관객에게 전달하는 위로의 선물이다.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스틸사진.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천상욱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