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를 둘러싼 국제 통상 환경이 심상치 않다. '데이터 지역화'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다음 달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전자상거래 협정에서 주요 국가들이 데이터 지역화를 주요 의제로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 지역화는 전자상거래 등 관련 기업이 자료를 수집하면 국가 안에서만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수집한 자료에는 개인정보 같은 민감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역외로의 데이터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다.
국가에 따라 입장이 엇갈린다. 유럽, 중국, 인도 등은 찬성 입장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발효하면서 개인정보의 역외 이전 금지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다만 어떤 국가의 개인정보 보호 수준이 EU와 비슷하다고 판단하면 이전을 허용한다. 일종의 적정성 평가를 거쳐 통과되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중국도 올해 1월 1일 데이터 지역 조치를 발효했으며, 인도 역시 데이터를 보관하는 지역 데이터 센터와 서버 팜을 국내에 설치토록 강제화했다. 반대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 일본이 강경하다. 미국은 지난해 발효된 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서 데이터 지역화 금지 조항 협정문을 명시했다. 일본, 미국과 같은 행보를 걷고 있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을 근거로 데이터 지역화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아직 명확한 방침은 세워져 있지 않다. WTO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경우 치열한 논리 다툼이 불가피하다. 특히 수출형 경제 구조에 의존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전체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통상환경 주도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 늦기 전에 데이터 규제 혁신에 관한 원칙과 방향을 구체화해야 한다. 자칫 어정쩡한 입장을 고수하다가 세계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하루빨리 공론화, 국익 차원에서 합당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