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퀄컴이 2년 동안 이어 오던 30조원대 특허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했다. 2017년 1월 퀄컴이 독점 지위를 이용해 과도한 특허 사용료를 요구한다며 애플이 소송을 제기한 지 2년여 만이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화웨이가 자체 칩으로 5세대(5G) 스마트폰을 선보이자 경쟁에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인텔은 5G 모뎀 칩을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5G 모뎀 칩 제조 3사 가운데 선택할 곳은 퀄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를 사실상 애플이 백기 투항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특허가 단순히 자사 기술 보호나 독점 사용 등을 넘어 기업의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비단 애플과 퀄컴 사례가 아니더라도 거대 기업 간 특허 분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은 물론 특허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잘 정비된 지식재산권(IP) 관련법을 활용, 전 세계 IP 분쟁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을 압박하고 있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중국은 발 빠르게 IP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은 이미 1989년, 1992~1996년, 2000~2001년, 2004년 등 네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를 우선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미국의 통상법 스페셜 301조에 기반을 둔다.
이미 잘 알고 있는 301조는 일반, 슈퍼, 스페셜로 나뉜다. 일반과 슈퍼 301조는 제재 대상과 분야 제한이 없다. 반면에 스페셜 301조는 IP 분야에 한정한 조항이다. 이미 일반, 슈퍼 301조를 통해 충분히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별도로 스페셜 301조를 제정해서 IP 분야 통상 압력을 강화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 절대적인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는 IP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미국이 현재 세계 최고 강대국이 된 이유도 정보기술(IT) 분야 특허를 가장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풀이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런 특허를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공고히 하는 것은 미국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이 유럽 최강국으로 떠오른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5년 전부터 일본이 동남아시아에서 출원하는 특허가 급증하고 있다. 급성장하고 있는 동남아 시장 선점을 위해 특허로 기술 장벽을 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원주 특허청장의 표현을 빌리면 '총성 없는 특허(혹은 IP)전쟁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군사력이나 경제력(금융)이 이전 강대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면 이제는 특허가 가장 효율적인 무기가 되고 있다고 한다. 충분히 공감되는 해석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4대 특허출원 강국으로 꼽히면서도 국내에선 지식재산 가치를 제대로 이해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지식재산을 통한 경쟁력 확보는 요원한 일이다.
다행히 특허청을 중심으로 올해 '지식재산 생태계 혁신전략'(이하 혁신전략)을 추진, 지식재산을 통한 국가 경쟁력 높이기에 나선다고 한다. 7월부터 IP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시행되고, 금융권도 IP 금융 활성화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좋은 신호다. 21세기 총성없는 특허전쟁 시대에 특허강국 대한민국도 세계 최강국 반열에 오를 기회를 얻은 셈이다. 여러 움직임이 좋은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