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비메모리 자신감 붙은 삼성…'반도체 비전2030' 선언 배경은

[이슈분석]비메모리 자신감 붙은 삼성…'반도체 비전2030' 선언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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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 달성을 천명한 이유는 시스템 반도체를 포함한 비메모리가 삼성 반도체 사업의 도전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됐다.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분야, 즉 정보 저장 기능을 수행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다.

시장조사업체 IHS마켓에 따르면 삼성의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각각 42.8%, 35.8%로 선두다.

그러나 연산이나 논리 작업과 같은 정보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비메모리 분야에선 얘기가 다르다. 삼성전자는 후발주자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단적인 예를 매출 구조에서 엿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DS부문)에서 86조원을 벌었다. 이 매출의 80%가 메모리에서 발생했다.

이는 삼성이 파운드리 사업,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이미지센서 등 비메모리로 벌은 돈이 약 17조원이란 뜻이다.

17조원은 다른 비메모리 업체 실적과 비교할 때 낮은 수치다. 세계 최대 중앙처리장치(CPU) 업체인 인텔은 지난해 708억달러를 벌었다. 708억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 81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실적은 대표적 모바일 반도체 업체인 퀄컴과도 비교된다. 퀄컴의 지난해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매출액은 227억달러(약 26조원)으로, 삼성보다 약 10조원이 많다.

이런 차이는 근본적으로 시장 규모 차이에 근간을 두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나뉜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단어 뜻 그대로 '메모리가 아닌 반도체'를 총칭하는 말이다.

비메모리 시장 규모는 메모리의 2배에 육박한다. 비영리 시장조사기관인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에 따르면 지난해 비메모리 시장 규모는 3100억달러(약 340조원), 메모리 시장은 1600억달러(약 180조원)였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시장을 석권해도 비메모리 사업을 키우지 않으면 향후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이유다. 또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할수록 비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비메모리 분야가 삼성이 가야할 길이라고 했다. 올해 초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반도체 비메모리 쪽으로 진출은 어떤가”라고 묻자 이 부회장은 “기업이 성장하려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면서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 의지를 밝혔다.

◇자신감 생긴 삼성

비메모리 육성은 삼성 뿐만 아니라 메모리에 편중된 국내 반도체 산업계의 오랜 숙제와 같았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업계는 물론 정부가 그동안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기술력, 노하우 등 진입 장벽이 높아 성과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이 '2030년 시스템 메모리 1등'을 선언할 정도로 구체적 목표와 목소리를 힘줘 낸 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일정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대표적인 예가 파운드리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설계 회사(팹리스)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대신 생산해주는 산업이다. 반도체 생산에는 막대한 투자가 들기 때문에 설계와 제조가 각각의 산업으로 나뉘었다.

삼성은 파운드리 업계 후발주자였지만 어느덧 선두권에 진입했다. 시장조사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6년까지만 해도 업계 4위였지만 2017년부터 2위로 올라섰다. 삼성의 점유율은 약 15%로, 50%를 차지하고 있는 1위 TSMC와 격차는 크지만 3위와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이제 삼성 입장에서는 1위 추격만 남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 기기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AP에서도 성과를 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AP시장에서 세계 4위다. 3위 애플(14%)과는 큰 차이가 나지 않고, 1위와 2위인 퀄컴, 미디어텍을 추격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눈에 해당하는 이미지 센서 시장에서도 소니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 TSR에 따르면 이미지센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점유율은 23.3%, 소니는 26.1%다.

삼성은 이처럼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비메모리 사업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선두권에 도약하고, 명실상부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발전에도 기여할까

삼성전자는 첨단 공정 역량 강화를 통해 국내 반도체 생태계 발전과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에도 큰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제조 기반을 마련한 만큼 국내 반도체 설계기업들이 최첨단 반도체를 개발하고, 출시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파운드리 사업은 반도체 장비, 소재, 디자인, 패키징, 테스트 등 다양한 전문 업체들이 함께 뒷받침되는 것이 중요하다.

설계가 가능해도 공정이 준비되지 않으면 제품이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상호 유기적인 연계가 필수다.

그러나 대기업 및 소수 기업을 제외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계는 열악한 실정이어서 삼성전자의 의지만큼 산업 전반에 경쟁력 강화 효과를 이끌어 낼지 미지수다.

실제로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는 국내 팹리스 업계는 수익을 거두는 곳이 손에 꼽힐 정도다. 매출액 기준 국내 팹리스 상위 10개 업체 중 5곳이 지난해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위기감이 커졌다. 반도체 설계는 우수 인재가 필수지만 중소기업 위주에 경영도 악화되면서 인력 유입이 끊기고 있다.

홍상진 명지대 교수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200개가 넘는 팹리스 업체가 있었지만, 2010년대 들어와서 약 절반으로 줄었다”면서 “10위권 아래 회사는 실적 부진 늪이 더욱 깊어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상무는 “영세한 팹리스들이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으니 정부가 툴, 인력, 연구비 같은 연구 환경 조성에 노력하고, 기업들이 돈을 벌면 스스로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