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3D프린팅 등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세계의 산업 구조를 뒤바꾸고 있다. 생명공학 분야에선 3D프린팅 기술로 인공장기를 만들 수 있는 3D 바이오 프린팅 연구가 한창이며, 의료 분야에선 인공지능(AI)으로 암을 진단하거나 로봇으로 수술을 하는 등 기술이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에서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는 4차 산업혁명을 저성장의 돌파구로 삼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혁신 정책들을 마련해 왔다. 미국은 제조 부문 혁신을 위한 첨단제조파트너십(AMP) 프로그램을 통해 첨단 정보기술(IT) 연구를 집중 지원하고, 일본은 2017년부터 '미래투자전략'을 수립해 빅데이터와 AI 활용을 촉진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은 '제조2025' 전략 아래 제조업 혁신과 산업 구조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지난 2017년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을 발표한 이후 AI, 빅데이터, 초연결 등 핵심 어젠다 중심으로 분야별 생태계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의 산업 분야별로 마련돼 있던 법, 제도가 신산업에 대한 규제로 작용하지 않도록 제도 혁신이 적극 필요한 시점이다.
지식재산 제도도 마찬가지다. AI, 빅데이터, 3D프린팅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의 세계 특허등록 건수는 2010년 이후 5년 만에 무려 12배 증가했다. 치열한 지식재산 전쟁 속에서 우리 기업이 역량을 펼치기 위해선 혁신 기술을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하드웨어(HW) 중심의 현행 지식재산 보호 체계는 3D 데이터 전송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침해 유형을 포함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특허 받은 제품과 부속품을 스캐닝한 후 그 3D 데이터 파일과 조립도를 제공해서 불공정한 이익을 취한다 해도 '특허를 받은 물건'의 유통만 금지하는 현 특허 제도는 그 특허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디지털 파일'의 유통에 대해 특허권을 보호하기 어렵다.
또 기존의 특허 부여 기준에 따르면 인체의 수술, 치료, 진단 방법은 특허로 보호받을 수 없다. 의사의 의료 행위를 특허로 독점할 경우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준 적용이 지나치게 엄격하면 의사의 의료 행위가 아니라 AI로 진단하는 기술, 인체에 관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정밀 의료 기술 등도 특허 받기가 어려워져서 혁신 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같은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특허청은 지난 3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식재산보호체계 개선 방안'을 국가지식재산위원회에 상정, 논의했다. 이 방안은 특허 등록된 제품의 3D프린팅 데이터 전송 행위를 특허 침해로 규정하고 유전체 정보 같은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인체를 진단하는 등 바이오헬스 신기술을 특허 등록할 수 있도록 특허 부여 기준을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융·복합 기술에 대한 특허 심사 전문성 확보를 위해 전담 특허심사 조직을 보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를 통해 새로 등장한 혁신 기술들이 일관된 기준으로 특허 심사를 받고 알맞은 시기에 지식재산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 디지털 음원을 정당한 대가 없이 내려 받아도 아무런 제재가 없던 시절 음악 산업이 위축된 이후 오늘날 K팝 전성기를 맞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혁신 성장 산업은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보호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글로벌 경쟁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특허청은 우리 기업이 신기술을 신속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4차 산업혁명 기술에 대한 우선 심사를 확대하는 등 새로운 정책 환경에 대응해서 합리 타당한 지식재산 제도의 유연한 운영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혁신 기술 개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 기업들이 든든한 지식재산을 기반으로 세계로 나아가길 기원한다.
박원주 특허청장 park.wonjoo@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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