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등 비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위를 목표로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에 도전한다. 전문 인력만 1만5000명을 양성하고, 관련 중소기업 생태계도 적극 키워 보겠다고 밝혔다.
기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 건을 관심 있게 봤다. 우선 우리 재계와 산업에서 여전히 통 큰 결정에는 오너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또 오랜만에 정부와 대기업이 한목소리를 냈다는 것에 흥미가 끌렸다.
삼성의 결정 과정부터 보자. 큰 투자에는 기업가의 '야성적 결단'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전문경영인은 절대로 사업 판을 뒤집지 못한다'는 말까지 있다. 이번 삼성전자의 결정에도 이재용 부회장의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삼성은 오너의 빠른 결정으로 성장 기회를 만들었다. 삼성은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의 결단으로 1967년 전자산업에 진출했고, 이건희 회장이 1974년 주변의 만류에도 파산 직전에 있던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큰 성과를 냈고, 이제는 이재용 부회장이 시스템 반도체에 새롭게 도전하게 됐다.
결단이 성공하려면 시점도 맞아야 한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5세대(5G) 통신,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 산업의 근간에는 분명히 시스템 반도체가 있다. 이 때문에 삼성의 이번 행보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몇 년 앞서서 시작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각도에서 삼성과 정부 간 관계를 보자. 삼성전자의 이번 계획은 올해 들어 정부가 꾸준히 강조하고 있는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의 비메모리 산업 육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서 메모리 반도체 편중 현상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자”고 주문한 바 있다. 이르면 이달 중에 정부 차원의 시스템반도체 종합 육성책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모처럼 정부와 우리 대표 기업 간 '팀 플레이'가 이뤄졌다. 정부의 시스템 반도체 육성 의지에 삼성전자가 화끈하게 화답한 셈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정부와 산업계는 서로 '소 닭 보듯'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태의 후유증 탓으로, 교감 자체를 꺼렸다. 그 결과 정경유착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가 협의해서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를 촉진시키는 순기능도 함께 사라졌다.
일부에서 정부와 대기업 간 협의를 두고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특혜 시비가 없는 발전적 논의까지 금기시하는 일은 경제와 산업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이번 비메모리 반도체 사례가 좋은 산업 진흥 모델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주요 기업, 또 관련 중소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산업 프로젝트가 확대될 신호탄이 된다면 좋겠다.
정부와 기업 간 관계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은 기본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다. 이것만 충족시킨다면 국가 수소경제 확산 프로젝트에 현대차가 큰 역할을 맡는 것, 국가 K컬처 육성에 CJ가 적극 동참하는 일 등은 얼마든지 늘어나도 괜찮을 것 같다.
김승규 전자자동차산업부 데스크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