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식물해설가가 건져 올린 공감서...정충화 산문집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북리뷰] 식물해설가가 건져 올린 공감서...정충화 산문집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시인이자 식물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충화 작가가 2011년부터 충주에서 시작한 자취생활의 기록, 삶과 세상에 대한 시선, 식물해설가로서 자연생태계에 대한 관점 등 100편을 수록한 산문집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를 출간했다.

이번 산문집에서는 준비 없는 노후를 맞은 처지를 걱정하면서도 품격 있는 삶을 놓지 않으려는 작가의 성찰이 공감을 일으킨다. 가르치려 하지 않고, 담담하게 정년을 앞둔 50대 후반의 삶과 생각을 기록했다. 길지 않은 글들이지만 공감의 여운을 담았다.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관계이다. 작가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과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토대로 호혜적, 상호 의존적 관계를 형성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고령화 사회에 인생이모작은 보통명사가 되었다.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정년은 짧아졌다. 시인이자 식물해설가로 온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식물과 친구하기’를 주제로 들꽃, 식물을 알려온 정충화 작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준비 없이 맞게 될 불안정한 노년기에 대한 걱정은 날로 무게를 더한다”고 고백했다.

그렇다고 ‘무소유의 삶이 좋은 거’라는 고담준론으로 포장하진 않았다. 작가는 “내 소유의 재산이라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쓸쓸했다”며 “밥은 외면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현실”이라고 밥벌이의 고달픔을 토로했다.

작가의 성찰은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분별심 대신 균형을 생각하게 된 것도 '위 어금니가 쪼개져 며칠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했을 때'라고 밝혔다. 이도 아래 위, 좌우가 균형 있게 협업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고 신체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생생히 체험하며 사회, 국가로 균형의 시선을 확장했다.

작가는 산문집을 통해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여행, 걷기, 식물과의 만남, 벗과의 술, 책 읽기를 들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품격 있는 삶의 훌륭한 방편이라 강조한다.

정충화 작가는 인사말을 통해 “나의 현실은 여러모로 열악하지만, 삶이 크게 불행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자식들 다 자랐고 남은 날들 읽을 책 충분히 쌓아뒀다. 몇 발짝만 움직이면 좋아하는 식물 볼 수 있다. 가까이에 좋은 사람들 있으니 그것으로도 과분하다"며 "이 정신적, 정서적 자산을 뒷배 삼아 이제 내 후반부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자신문인터넷 조항준 기자 (jh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