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확전 양상을 띠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을 상대로 추가적인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양사 갈등이 맞소송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일 “LG화학과 배터리 개발기술과 생산방식이 다르고 핵심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어 경쟁사 영업비밀이 필요 없다”면서 “근거도 없이 SK이노베이션을 깎아 내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법적 조치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엄중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LG화학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했다. 2017년부터 LG화학 전지사업본부 핵심인력 76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했고 이 과정에서 핵심 기술이 유출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 배터리 기술과 생산방식이 전혀 다른데다 지난 1996년부터 조 단위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이미 자체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경쟁사 인력 빼오기로 영업비밀을 침해할 필요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배터리 설계와 생산에 있어 LG화학은 '스택 앤 폴딩' 또는 '라미네이션 앤 스택킹'으로 불리는 전극을 쌓아 붙여 접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접착공정 없이 전극을 먼저 낱장으로 재단 후 분리막과 번갈아가면서 쌓는 '지그재그 스택킹'을 적용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업계 후발주자이기는 하지만 2014년 세계 최초로 'NCM 622'(니켈·코발트·망간 비율이 6:2:2인 양극재)을 양산하고 지난해 'NCM 811'을 세계 최초로 양산에 적용하는 등 자체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인력 영입에 대한 입장도 엇갈린다. LG화학은 이차전지 양산 기술과 핵심 공정기술이 담겨있는 입사지원 서류를 증거로 제시하며 영업비밀 침해를 주장하고 있다. 입사지원 서류에 LG화학에서 수행한 상세한 업무 내역은 물론 프로젝트 리더,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 전원 실명을 기술하도록 한 점을 근거로 삼았다.
SK이노베이션 측은 그러나 “후보자들이 자신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정리한 자료로 내부 기술력을 기준으로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라며 “대부분 기업이 경력직 채용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LG화학은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와 리더의 실명, 상세한 성과 내역을 기술해 개인 업무와 협업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주요 연구 인력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어떤 업계에서도 절대 일상적이지 않다”고 반박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공방이 오고가는 가운데 향후 소송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개된 자료로만 놓고 보았을 때 통상적인 산업기술보호법상 전직제한 외에 기술 탈취나 유출 혐의를 입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LG화학이 강력한 증거개시(Discovery) 절차가 있는 미국에서 소송을 걸었다는 것은 확실히 법정 다툼에서 이기겠다는 전략으로 SK이노베이션이 어떤 이유에서든 LG화학이 요청하는 자료를 제출하지 못할 경우 패소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