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위기가 곧 대한민국 위기다. '인구 절벽'에 앞서 찾아올 인공지능(AI) 시대에 대비해 전체 교육의 틀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 이공계 출신 대학 총장 13인이 AI 시대 사회 변화의 거대한 물결에 대비한 새로운 인재양성 필요성에 공감했다. 사회 전반을 뒤흔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틀을 깨고 산업과 대학, 정부가 함께 혁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자신문과 공학교육혁신협의회가 공동 주최한 '2019 대학 총장 간담회'에서 이공계 출신 대학 총장과 정부, 산업계가 'AI 시대, 대학교육의 방향'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고려대·광운대·부산대·서울과학기술대·서울대·성균관대·세종대·영남대·인하대·전북대·포스텍·한동대·홍익대 13개 대학 총장과 박백범 교육부 차관,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참석했다. 박명순 SK텔레콤 AI센터 본부장, 인텔코리아 권명숙 사장, 엄경순 한국IBM CTO 등 산업계 전문가와 장동식 공학교육혁신협의회장, 신수봉 공학교육혁신센터장 등 60여명이 자리했다.
간담회 참석자들은 국내 AI 경쟁력 수준을 진단한 결과 주요 국가에 비해 뒤처졌다는 데 공감했다. 각 대학이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준비했으나 큰 틀에서 방향타를 잡지 못한다는 뼈아픈 반성이 쏟아졌다. 국내 대학은 AI가 주목 받자 뒤늦게 학과 개편에 나섰지만 기술에만 치우쳤다. 정치, 사회, 경제, 인문은 물론 예술 영역까지 AI로 인한 변화가 스며들었으나 지엽적 대응에 머물렀다. 신동렬 성균관대 총장은 “교수보다 AI가 더 좋은 연구주제를 가져오는 시대가 온다”면서 “대학도, 정부도 비전과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경제·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새로운 직업군에 대응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학교를 개편해야 할 때라고 참석자들은 강조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AI는 이공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인구절벽'으로 인한 대학 변화보다 더 빨리 불어 닥칠 것이 AI로 인한 사회변화라는 주장도 나왔다.
발제자로 나선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미국 한 개 기업이 대한민국 전체보다 많은 AI 전문가를 보유한 현실을 보면 두렵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면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몰려오는 가운데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이 산업계와 소통을 기반으로 혁신하고 정부 지원이 뒷받침되면 AI 시대에 대응할 수 있다고 봤다. 정진택 고려대 총장은 “AI 시대는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이공계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교수도 위기의식을 느낀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동식 공학교육혁신협의회장은 “AI는 더 이상 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 사회,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문제”라면서 “선택과 집중의 차원이 아닌 사회 전반의 공론의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자신문과 공학교육혁신협의회는 AI 시대를 맞아 변화하는 대학의 모습을 조망하기 위해 간담회를 개최했다. 대학은 최근 AI 등 기술 이해도와 산학협력 마인드가 높은 이공계 출신이 대학 총장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주요 30개 대학에서 지난해부터 취임한 총장 12명 중 9명(75%)이 이공계 출신이다. 대학이 패러다임 변화를 선도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다. 간담회에서는 이공계 출신 대학 총장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사회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목소리를 냈다.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