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자립형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해 지속가능한 에너지 생산·소비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마이크로그리드(소규모 독립형 전력망) 연구개발(R&D) 및 실증에 적극 나서 에너지 전환이 가능한 환경을 선제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중국에 크게 뒤쳐진 전기차 산업을 활성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방향성도 제시됐다.
'제4회 국제에너지콘퍼런스&한반도 전기차 발전포럼'이 9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됐다.
포럼은 통일부·산업통상자원부·제주특별자치가 주최하고 전자신문·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한국뉴욕주립대·서울대 전력연구소·제주대·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한국전기연구원·한국전력공사·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 주관했다.
오명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은 환영사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전기차 분야에서 입지를 공고히 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 위상에 걸맞은 전기차 지위를 확보하는 것은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오 전 부총리는 “중국은 이미 전기버스 700만대 보급 계획을 세우는 등 비약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전기차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 글릭(Mark Glick) 하와이대학 천연에너지연구소 교수는 '하와이 주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하와이가 '에너지 자립섬'으로 도약하는 단계에 있다며,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개발 테스트베드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릭 교수는 “하와이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전체 40%까지 늘릴 계획으로 신축 주택에 태양광 패널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등 정책적 뒷받침이 중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2030년까지 60% 목표 달성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진단하며 하와이가 미국 50개 주 가운데 태양광 발전량 2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국내·외에서 실시된 '마이크로그리드 실증 사례'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마이크로그리드는 소규모 독립형 전력망으로 재생에너지원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융·복한 차세대 전력체계다. 전기를 스스로 생산하고 공유하는 미래형 에너지 공급 방식으로, 국내에서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김찬기 전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럽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마이크로그리드를 시작해 현재는 슈퍼그리드 성숙단계까지 왔다”며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연계하기 위해서는 고압직류송전(HVDC) 기술개발이 매우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슈퍼그리드는 국가 간 전력을 거래하는 포괄적 범위의 전력망 연계방식이다.
김 연구원은 “영국은 벨기에·네덜란드·노르웨이·독일 등과 슈퍼그리드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슈퍼그리드 건설 허가를 유럽국가로 제한해 생산성·경제성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전력망을 연계하는 과정에서 디도스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사이버 보안 체계'를 강력히 구축하는 것도 핵심 과제라고 조언했다.
김 연구원은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이 체계화되기 위해서는 에너지 관련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전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 것 외에 개별 전력거래는 법적으로 제약이 뒤따른다는 설명이다. 그는 “1970년대 고도성장 때 만든 옷에다가 현재 유행하는 액세서리를 달려고 하니까 매칭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학 LS산전 실장은 서울대에서 실시한 '캠퍼스형 마이크로그리드 실증'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대 57개동에 관련 설비를 구축했고 마이크로그리드 설치비용은 30억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연구개발까지 포함하면 소요비용은 180억원 수준이다.
신 실장은 “4시간 독립운전, 20% 비용절감, 10% 전력 세이브 등 3가지 목표를 수립한 후 실증에 나섰고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특히 △강의실 모델 △연구실 모델 △도서관 모델 등 각 환경에 맞는 전력 연계시스템을 구축하고, 통합운영센터(MOMC)에서 모든 과정을 모니터링하는 방식이 효율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이효섭 인코어드 테크놀로지스 연구소장은 하와이 주정부와 현지에서 마이크로그리드를 실증한 사례를 소개하며, 국내 현황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마이크로그리드를 국가 전력망과도 연계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방안도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국 우진산전 상무는 남태평양 피지에서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을 구축한 실증 사례를 소개하며, 한국산업진흥원과 에콰도르에서 추가 실증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2020년까지 진행하는 사업으로 현재 20% 수준인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김성엽 댄포스코리아 대표는 수송 부문에서 친환경 방식으로 이산화탄소 저감에 긍정 영향을 준 사례를 공유했다.
이 밖에 신혜성 통일부 과장, 손상훈 제주연구원 박사, 최세열 평양과기대 교수, 유창근 개성공단 재개추진단 단장, 김수종 국제녹색섬포럼 이사장, 이상훈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소장, 이승율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 이병윤 한국전시주최자협회 남북전시사업단장은 '한반도 전기차 발전 및 협력 방향'을 논의했다.
야코프 샤마쉬 뉴욕주립대 부총장은 “뉴욕주는 정부 투자와 지원을 받아 해상 풍력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다”며 “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전환은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했다
문승일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도 “세계는 에너지 전환시대를 맞아 화석연료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바꿔나는 등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