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통신장비업체 ZTE가 5세대(5G) 스마트폰으로 재기를 노린다. 지난해 미국 무역제재로 부진한 경영실적을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ZTE는 5G 스마트폰을 독일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에서 출시할 계획이다. 중국 시장에서도 화웨이·샤오미 등과 대결을 펼친다.
ZTE는 최근 중국 푸저우에서 첫 5G 플래그십 스마트폰 '액손(Axon)10프로'를 발표했다. 현장 시연에서 1GB 데이터를 다운받는 데 걸린 시간은 단 4초. LTE보다 10배 빠른 속도다. 액손10프로는 퀄컴 X50 5G 모뎀을 장착했으며, 2G·3G·LTE·5G를 모두 지원한다. 이밖에도 퀄컴의 최신 프로세서인 스냅드래곤 855를 장착했고 6G 램, 128GB 저장공간, 4000mAh 배터리 용량을 갖췄다. 카메라는 전면 2000만화소, 후면 4800만화소+2000만화소+800만화소 트리플 카메라를 장착했다. 디스플레이 지문인식과 18W 고속충전도 지원한다.
발표회 참석자들은 액손10프로에 일단 합격점을 줬다. 전세계 5G 단말기 규격에 부합하다는 평가다. 앞서 화웨이나 비보가 선보인 5G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호평도 쏟아졌다.
ZTE는 출시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쉬펑 ZTE 단말사업부 총재는 중국 매체 제일재경과 인터뷰에서 “액손10프로는 상용화 준비를 모두 마쳤으며 현재 통신사와 조율만 남겨둔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 ZTE는 지난 4월 제품을 대량 출하하기도 했다. 통신사 측 준비가 완료되는 즉시 출시가 가능하게끔 대기 중이다.
지난해 4월 ZTE는 미국의 대북·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를 받아 사상 최대 위기에 몰렸다. 미국이 7년간 ZTE와 미국 기업간 모든 거래를 중지시키기로 하면서 사업에 제동을 건 것이다. 회사 존폐가 위협받는 지경까지 이르자 같은 해 7월 ZTE는 결국 10억 달러(약 1조 1368억 원) 벌금을 내고 제재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후폭풍이 거셌다. ZTE는 미국 제재의 여파로 지난해 69억 위안(약 1조 1644억 원) 적자를 봤다. 스마트폰 사업도 타격을 받았다. 미국 시장 4위까지 기록했던 ZTE 스마트폰 사업은 후퇴했고, 중국에서도 지지부진한 성적을 보였다. 일각에선 ZTE가 스마트폰 사업 매각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회복 기미가 보인 건 최근 들어서다. ZTE 여러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면서 스마트폰 사업도 서서히 재개되고 있다.
ZTE는 스마트폰 분야에서 새로운 전략을 짜고 있다. 먼저 그간 입지를 다져왔던 미국에서 독일,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 유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ZTE는 현지 이통사와 협력해 5G폰 출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중국 내수 시장에 대한 관심도 크다. 다만 현재 경쟁 구도로 봐선 ZTE가 넘어야 할 산이 크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소수의 대형 제조사가 장악하고 있고, ZTE는 이들과 경쟁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2018년 중국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을 보면 1~4위는 화웨이·오포·비보·샤오미이며, ZTE는 10위에 머물렀다. 점유율로는 1%가 채 안 된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둔화도 문제다. 지난 1분기 중국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동기보다 7% 하락했고, 전분기보다 12% 줄어들었다. 경쟁 과열과 시장 포화현상이 심각하다.
다시 기회 잡을까?
가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마켓 리서치 연구총괄 옌잔멍은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소수 기업에 쏠리고는 있지만 중소 브랜드의 제품 수요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라며 “게이밍폰등 차별화 제품의 고객 흡입력도 분명 있다”고 말했다. ZTE가 이러한 틈새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더 중요한 건 5G다. 통신장비업체 ZTE가 승부를 봐야할 것은 결국 5G라는 얘기다. ZTE가 5G를 선점한다면 현재의 스마트폰 시장 구도를 뒤엎을 가능성은 있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ZTE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당장은 시장이 크지 않지만 5G의 미래 잠재력을 고려하면 승부를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5G 초기 시장에서 일부 점유율이라도 확보하는 게 ZTE 단기 목표다.
쉬 총재는 “중국에서 1년에 4억 대 스마트폰이 팔리는데 올해 5G폰은 이중 2%(800만 대)를 점유할 전망”이라며 “이중 일부를 ZTE가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ZTE는 올해 5G폰 출시와 함께 오프라인 유통에 신경을 쓸 방침이다. 애플숍, 미홈과 같은 플래그십 매장 등을 세워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ZTE는 올해 여러 파트너사와 협력해 유통 채널 확보에 나설 전망이다.
5G 시대가 열리면서 ZTE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ZTE는 지난해 미국 제재에 따른 불명예를 씻고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권선아기자 suna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