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9은 기아자동차를 대표하는 플래그십(최고급) 세단이다. 1세대 모델이 애매한 차급으로 실패했지만, 지난해 출시한 2세대 모델은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해외 명차를 떠올리는 디자인, 당대 최고 기술력이 적용된 첨단 사양, 안정화된 주행성능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연식 변경한 K9은 섬세한 터치까지 가미하면서 한 차원 높아진 고급 세단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2020 K9 퀀텀 풀옵션 모델을 타고 서울에서 대구를 지나 청도까지 다녀오는 총 1000㎞ 구간을 시승했다. 이번 시승에서는 2020 K9이 연식 변경에서 적용된 변화와 장거리 주행 승차감, 주행성능,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성능을 전반적으로 알아봤다.
2020 K9 퀀텀은 전장 5120㎜, 전폭 1915㎜, 전고 1490㎜, 축거 3105㎜다. 제네시스 G90과 비교하면 전폭은 동일하지만, 전장 85㎜, 전고 25㎜, 축거 55㎜ 작다. 그렇지만 작은 크기는 아니다. BMW 7시리즈, 메르세스-벤츠 S클래스와 전장은 같거나 비슷하고, 전폭은 더 넓다. 실내 공간은 독일 플래그십 세단보다 더 크고, 트렁크도 골프백 4개와 보스톤백 4개가 동시에 적재될 만큼 넉넉하다.
외장 디자인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다. V6 3.3 모델에는 '스포츠 콜렉션'이 추가되면서 젊은 느낌이 강화됐다. 하지만 퀀텀은 중후한 느낌을 주기 위해 기존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그릴 테두리, 범퍼 몰딩, 사이드 가니쉬,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베젤 등 외관의 모든 몰딩부에 유광 크롬을 적용해 클래식한 느낌을 강조했다.
K9 전면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헤드램프와 '쿼드릭 패턴 그릴(Quadric Pattern Grill)'이다. 헤드램프는 세련되면서 고급스러운 인상을 구현한 '듀플렉스(Duplex) LED 헤드램프'가 장착됐다. 또 빛의 궤적을 동적으로 형상화한 주간주행등(DRL)과 시퀀셜(순차점등) 방식의 턴시그널 램프, 정교하게 가공된 라이트커튼 이너렌즈도 적용됐다. 그릴은 기아차 특유의 '타이거 노즈' 형태를 유지하면서 독특한 패턴을 넣어 고급스러움과 역동성을 동시에 연출했다.
측면부는 휠베이스 확대를 통해 균형 잡힌 비례감을 기반으로 시각적 안정감과 중후함을 추구했다. 또 긴장감 있는 측면 면 처리, 변화감 있는 이중 캐릭터라인으로 역동적인 주행이미지를 표현했다. 벤츠 S클래스, 벤틀리 등을 떠올리게 하는 후면부는 세련된 인상과 고급스러움의 조화로 완성도 높은 이미지를 강조했다.
K9 실내 공간은 기존 국산차에서 느낄 수 없었던 고급스러움이 구현됐다. 1열 공간은 시트, 도어, 가니쉬 등 사람 몸과 닿는 곳곳이 나파가죽으로 덮여있다. 차량 필러(기둥)와 천장에 적용된 인조가죽은 알칸타라와 비슷한 촉감을 제공했다. 전체적인 느낌은 크고 웅장하면서 고급스러움이 묻어나왔다.
실내 레이아웃은 수평으로 간결하게 전개해 안정적이고 균형감 있는 이미지를 구현했다. '12.3인치 UVO 3.0 고급형 내비게이션'은 우측 분할 화면을 통해 번거로운 화면 간 이동 없이 내비게이션 안내를 받으면서 미디어, 공조, 날씨 등 다양한 콘텐츠를 동시에 확인 가능했다. 내비게이션은 기아차 최초로 '자동 무선 업데이트(OTA)' 기능이 적용됐다. OTA는 차량 스스로 서버와 연결해 지도 데이터, 소프트웨어를 자동으로 업데이트한다.
뒷좌석은 앞좌석보다 더욱 화려하다. 구형 K9은 뒷좌석 시트와 도어 각도 때문에 '사장님' 고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2세대 모델의 경우 이와 같은 불편함이 개선됐다. 퀀텀 모델의 경우 '레스트 모드'를 하면 조수석이 앞으로 빠지고, 뒷좌석은 각도가 누워서 항공기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처럼 안락하게 바뀌었다. 시승차에는 듀얼 모니터까지 장착돼 있었다. 다만 조수석 발받침, 마사지 기능 등이 없어서 아쉬웠다.
K9 퀀텀은 V8 5.0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이 탑재됐다. 5.0 엔진은 최고출력 425마력, 최대토크 53.0㎏f.m의 힘을 제공했다. 제네시스 G90에도 적용되는 이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여유로운 가속성능을 보여줬다.
주행모드는 에코, 컴포트, 스포츠, 커스텀 등으로 나뉘어진다. 주행모드에 따라 엔진 토크와 변속, 핸들 조작감에 연동해 좌우 바퀴의 제동력과 전·후륜 동력을 가변 제어하는 '전자식 AWD'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컴포트 모드로 달릴 때는 전형적인 대형 세단의 움직임을 선보였다. 하지만 스포츠모드로 고속 주행을 할 때는 날카로운 변속과 함께 넘치는 힘으로 완전히 다른 느낌을 전했다.
고속도로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살펴본 것은 ADAS 기능이다. K9은 국내 최고 수준 ADAS 기능을 완비했다. 고도화된 반자율기능인 고속도로주행보조시스템(HDA)은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NSCC)'까지 추가돼 도로 곡률, 주변 차량 주행 상황 등까지 고려해서 가·감속과 조향을 조작했다. 완성도 높은 NSCC 구현을 위해 내비게이션에 국산차 최초로 ADAS 맵을 적용했다. NSCC는 차로유지보조(LFA)와 함께 안정적인 반자율주행을 선보였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고속도로에서는 운전 대부분을 ADAS에 맡겼다. 잠깐잠깐 HDA 유지를 위해 스티어링휠을 잡아주기만 했다. NSCC와 LFA가 조합된 HDA는 고속도로에서 운전기사 역할을 해냈다. 일부 구간에서는 10분 이상 스티어링휠을 잡지 않아도 스스로 주행했다. 앞으로 차선 변경해 들어오는 차량은 미리 감지하고, 속도를 줄여서 해당 차량 진입이 끝난 뒤 따라가는 것까지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2020 K9은 제네시스 G90 출시 이후 잠시 흔들리던 시장에서 평가를 다시 한 번 잠재워줄 만큼 보완되서 나타났다. 특히 V8 5.0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하고, 동일한 스펙의 기술이 적용되고도 2000만원 이상 저렴한 9179만원이라는 가격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