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연구개발사업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연구개발 예타). 예타 제도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서 시작됐기에 연구개발 예타는 언뜻 생소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나라 연구개발 예산이 최초로 10조원을 돌파한 시점 전후인 2008년에 시작된 제도다. 10여년 기간 동안 연구개발 예타 제도의 변천사를 보면 대형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정부 메시지가 보인다.
도입기 메시지는 연구개발 투자 효율성 제고와 예산 절감으로 볼 수 있다. 정부 자료에 의하면 2017년 9월까지 145개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예타를 실시해 45개 사업이 타당성이 부족한 것으로 판정함으로써 약 17조원 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0년 가까이 유지되던 메시지가 극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계기는 작년 4월 연구개발 예타 업무가 기획재정부에서 과기정통부로 위탁된 일이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연구개발 예타를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연구현장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비판과 우려를 해소하고자 한 듯하다. 그리고 지난 1년간 과기정통부의 연구개발 예타 수행 현황을 통해 변화된 메시지를 알 수 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사업 추진 여부에 경제성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창의성과 도전성이 요구되는 사업조차도 경제적 잣대로 평가함으로써 오히려 과학기술 혁신을 저해한다는 원성이 있었다. 최근에는 사업에 따라 중점적으로 조사하는 항목을 다르게 적용함으로써 예전 기준으로는 통과가 어려웠을 사업이 통과된 사례가 보인다.
두 번째 메시지는 사업 추진 효과를 최대화 할 수 있는 꼼꼼한 기획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예타를 탈락한 사업뿐만 아니라 통과한 사업에도 조정된 예산을 보면 치열한 검토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이러한 메시지는 대형 국가연구개발사업을 기획하는 정부부처 및 관련 기관 변화를 끌어내리라 생각한다. 다만 아직 연구 현장에서 추가되길 바라는 메시지를 제안해 본다.
하나는 현장연구자에게 좀 더 많은 연구 자율성과 도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연구개발사업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개발은 경제성 평가를 과감히 폐지하고, 과학기술적 잠재력과 혁신성을 평가하는 항목이 대폭 보강돼야 한다.
또 단기 성과 위주 평가보다는 장기적 호흡을 가지고 도전적 연구개발을 응원할 수 있는 평가체계 및 예산 연동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성공이 담보된 안정적인 연구개발만으로는 세계를 선도할 수 없기에, 다소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새롭게 도전해 볼 만한 중요하고 혁신적인 연구개발에는 성공여부와 무관하게 지속적인 예산이 투입될 수 있어야 하겠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는 국가의 큰 자산으로 축적돼, 또 다시 새로운 혁신 도전을 위한 밑거름과 발판이 될 것으로 믿는다.
연구개발 예타는 대형 국가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정부 메시지다. 정부 R&D 예산 20조원 시대를 맞이해, 이제는 우리가 규모에 걸맞은 제도와 운영 시스템을 갖출 시점에 와 있다. 과기정통부가 예타 제도를 지속 혁신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길 기대한다.
이승복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치의학대학원 교수 seungl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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