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에게 듣는다]오세정 서울대 총장, "AI 지금 안하면 못한다"

오세정 총장 사진=이동근 기자
오세정 총장 사진=이동근 기자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지난 2월 취임 후 100일 남짓한 시간 동안 인공지능(AI)밸리 조성, AI위원회 발족 등 굵직한 AI 정책을 쏟아냈다. 21일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총장실에서 만난 오 총장은 “AI 관련 연구개발과 사업 추진은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못 하는 것”이라며 “성공하든 실패하든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오 총장은 AI를 반도체에 비유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초기에 들은 말을 떠올렸다. 당시 오 총장은 한 삼성 임원에게 “반도체는 그야말로 기술집약적 산업이며, 한국은 기술력도 없는데 어떻게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냐”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지금 안 하면 영원히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 대한민국 반도체는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오 총장은 “반도체 산업처럼 AI 또한 우리나라가 반드시 해야 하는 산업이며, 지금이라도 전력을 다하면 세계 최고로 올라설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다음은 오 총장과의 일문일답.

-서울대가 앞장서서 AI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서울대의 AI 발전전략을 설명해달라.

▲고(故)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이 500억원을 서울대에 기부했다. 이 돈이 AI 생태계 조성을 위한 주춧돌이 됐다. 처음에는 AI 관련 건물을 설립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접근했지만, AI는 공대만의 연구 분야가 아니라 학교 전체가 함께 연구개발해야 하는 분야라고 판단했다. AI에서는 융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후 AI 관련 계획에 모든 학과가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고 추진 중이다.

최근 발족한 AI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공대 교수를 3분의 1 이상 넣으면 안 된다고 의견을 냈다. 옛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지낸 최양희 공과대학 교수를 위원장으로 공학·의료·인문·사회·경영·법학·예술 등 AI를 적용할 수 있는 여러 분야 교수와 외부 전문가 2명 등 총 18명으로 구성했다. AI위원회 산하에 교육 분야 TF구성을 검토 중이다. 인문사회 분야 학생을 대상으로 한 AI 교육 프로그램도 고민한다.

향후 AI연구소, 대학원, 교육과정을 만들 계획이다. 낙성대 지역을 중심으로 AI밸리도 조성할 계획이다. 실리콘밸리처럼 AI 인재, 기술, 시설 등이 집약된 곳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서울대가 모두와 함께 AI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서울대에는 이미 AI 관련 연구를 하는 교수진이 150여명에 달한다. AI는 기술만 좋다고 발전하는 분야가 아니다. AI를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대 이외 다양한 분야 교수진의 역할이 주요하다. 서울대는 모든 분야에 뛰어난 교수가 많은 종합대학이다. AI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AI의 영향력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AI는 대부분 분야 학문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며, 모든 분야에 응용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데 필수적이다. 기술 가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대학은 물론 사회 전반에 혁신과 변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또 융합과 통섭이라는 우리 사회가 새롭게 요구하는 가치를 반영한다.

-AI밸리 등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관악구 등 인근 지역과 더불어 성장하기 위한 계획을 설명해달라.

▲지역주민의 큰 불만이 서울대가 관악구에 있지만 그들 삶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대로 들어오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관악구민이 서울대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서울대 입구 역에서 서울대에 들어오려면 약 30분이 걸린다. 재학생은 물론 지역주민, 외부 관계자들도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대 접근성이 높아지면 보다 많은 시민이 서울대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 경전철을 서울대에 이어달라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부탁했다. 접근성이 높아지면 박물관, 미술관이 있는 서울대 문화관을 주민에게 개방할 계획이다.

서울대는 연구중심대학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가는 대학으로 나아갈 것이다. AI밸리에도 서울대 출신 뿐 아니라 다양한 스타트업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는다.

오세정 총장 사진=이동근 기자
오세정 총장 사진=이동근 기자

-취임 이후 융합을 강조했다. 왜 융합이 중요한가.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자기 전공에만 치우쳐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AI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융합하려는 마인드가 중요하다. 다른 분야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내 전공 외에 다른 것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야 주도적인 학습이 가능하다.

융합이 중심인 교양강좌 개설을 준비 중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등 융합 주제를 바탕으로 토론하고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다. 철학, 생물학, 인문학 등 다양한 학문을 탐구할 수 있다. 인문대학생도 생물학을 접할 수 있으며, 공대 학생은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학생들이 자기 전공 안에 갇히기 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다.

-창업에 중점을 둔 정책을 펴고 있다. 창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창업은 학생 자아실현을 위해서도, 대학을 위해서도,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창업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창업을 하면 수십명의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새로운 산업은 경제를 살린다.

대학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벤처기업이 많이 나올수록 기업과 대학 간의 인적 교류도 활발해질 수 있다. 재정 강화와도 연결된다. 서울대가 발전하려면 재정이 확보돼야 하는데 정부가 지원하는 돈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학생이 준비 없이 졸업하자마자 창업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학교에서 창업에 관한 다양한 교육을 지원할 계획이다.

-'위기의 대학'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현재 우리 대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대학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많다. 그 가운데서도 신뢰가 깨진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본다. 대학은 '지성의 권위'가 있는 곳이었다. 외부에서 봤을 때 저 교수는 실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일부 교수의 성추행, 논문 표절 등으로 신뢰가 깨졌다. 이런 사실이 굉장히 가슴 아프다.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물론 언론에 나오는 교수가 모든 교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참 창피한 일이다. 대학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산학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대학은 산업계와 약간 동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산업계에 있는 사람을 산학협력단이나 장업지원단으로 데리고 올 계획이다. 특허의 경우 기업에서 특허 업무를 봤던 사람을 학교로 데리고 와 현실적인 옥석을 가릴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창업 또한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대학은 창업에 실패한 이나 창업해서 아주 돈을 많이 번 사람을 스카웃한다고 들었다. 기업을 운영해 본 사람은 현실적인 문제를 제대로 진단할 수 있다. 서울대도 실전에 투입된 이들을 뽑을 계획이다.

오세정 총장 사진=이동근 기자
오세정 총장 사진=이동근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입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식 전수가 교육의 주가 된다. 대학에 와서는 학생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등 주도적인 학습을 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교수들 농담까지 받아 적고, 교수와 의견이 달라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학생들의 현실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 익혔던 학습법을 바꿀 수 있도록 학교 차원에서 노력한다. 자기 전공이 아닌 분야도 알 수 있도록 융합 강의를 도입할 계획이다. 토론을 통해 남과 다른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캠퍼스없이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미네르바대학, 학과를 통폐합한 애리조나주립대학 등 해외 혁신 대학 사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대학의 혁신사례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파격적인 시도를 서울대가 전적으로 따르기는 어렵지만 혁신 대학의 정신만큼은 서울대가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들 대학은 토론이 주가 되고, 융합을 강조한다. 서울대도 이를 반영한 교양 강좌를 준비 중이다.

이런 대학의 사례는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대학에 큰 자극이 된다. 매년 애리조나 대학에 세계 각 대학 총장이 모여서 세미나를 한다. 애리조나 대학 사례도 볼 겸 세미나 참가를 검토 중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서울대가 준비하는 것은.

▲세계적인 대학을 가르는 것으로는 먼저 '연구'가 꼽힌다. 학부 교육이 얼마나 좋은지는 구분이 쉽지 않다. 연구성과가 중요하다.

냉정하게 말해서 서울대는 세계적인 대학이지만 세계를 끌고 가는 대학은 아니다. 즉, 글로벌 선도대학은 아니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려면 몇 개 분야에서 선도하는 대학이 돼야 한다. 지금 우리 교수들은 해외 선도대학의 연구 상황을 확인하지만, 반대로 해외에서 국내 대학 연구실이 무엇을 하는지 먼저 살피는 경우는 흔치 않다.

누가 서울대를 언급할 때 '서울대에 어떤 분야에서 아주 뛰어난 교수가 있었지'란 생각이 들어야 한다. 또 해외에서도 어떤 분야를 연구하려면 서울대에 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서울대 실력을 강화하겠다.

이를 위해 10개 분야를 선정해 세계 10위 이내 연구력을 인정받겠다는 '10-10(텐텐)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10개 분야는 세계 10위권 내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대담=이호준 정치정책부장

정리=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

○오세정 총장은…

대학, 국회, 정부기관을 두루 거친 과학 전문가다. 경기고를 졸업한 뒤 1975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자연과학대학 학장,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장,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한국과학기술단체연합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과학기술부문 최고 석학이 모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다.

2016년 바른미래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제27대 서울대 총장 선거가 열리는 2018년 10월경까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하다 서울대로 돌아왔다. 2010년, 2014년에 이어 세 번째 도전이었다. 서울대 총장이 되기 위해 국회의원직은 내려놨다.

물리학부 출신 첫 서울대 총장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오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모처럼 물리학자 출신 총장이 되셨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2월 취임 후 대학 교육 혁신을 주창했다. 3월 열린 2019학년도 입학식에서 “서울대는 자격증 발행소가 아니다”라고 강조해 화제를 낳았다. “주어진 지식을 기계처럼 암기하고 습득한 지식을 사용해 이윤을 추구하는 자격증 발행소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연구자 시절 저술활동도 활발했다. 총 181편의 학술논문(국외 163편, 국내 18편)을 발표했다. 주요 저서로는 '어린이 대학:어린이가 묻고 석학이 답하다' '기술의 대융합:21세기 창조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과학이 나를 부른다-과학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이 있다.

2003년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 1998년 한국과학상을 수상했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