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집을 소유한 사람을 집주인, 집에 세를 들어 사는 사람을 세입자라 한다. 집을 소유하면 '人(사람인)'으로, 그렇지 않다면 '者(놈자)'로 표현되는 것이다. 자본의 정도인 소유여부에 따라 대조적으로 표현해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꾸준하게 사용되는 것은 오랜 기간 습관적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무의식적인 습관에서 비롯된 잘못된 용어사용 예는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중량(무게)'과 '질량'이다. 모든 물체는 지구가 잡아당기는 인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려고 하는 힘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무게, 중량, 하중이다. 반면 물체가 가지는 고유한 양은 질량이다. 대한민국 1호 우주비행사였던 이소연 씨가 우주비행선 안에서 깃털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영상을 보면 그녀의 무게는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그녀를 양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질량은 그 어떤 곳에서 측정하더라도 변함이 없다.
우리 역사에서 중량의 용어는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다. 측정표준에 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대에 기록된 조선실록과 같은 역사서에서는 '중량을 측정한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반면 서양과학의 새로운 개념인 질량은 문헌상 1836년 철학자인 최한기가 쓴 '기측제의'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한다.
'질량의 단위는 킬로그램(㎏)'이라고 정의했던 국제도량형총회는 1902년 힘의 성질인 중량과 질량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질량과 중량을 혼용해 양을 표현하는 경우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트럭의 적재용량을 '중량 몇 톤', 과자의 양은 '중량 몇 그램'이라 표현하지만, 질량을 쓰는 것이 과학적으로 정확한 표현이다. 중량이 더 익숙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습관으로 치부하고 허용하기엔 문제가 있다. 모 공단에서 주관한 자격시험에서 '질량 980kg'이 아닌 '무게 980kg'이라 표현한 문항에 대해 연구원에 문의를 해온 적이 있다. 시험을 주관한 공단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용어의 차이를 잘 알았던 사람에게는 분명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자동차 같은 특정분야 법령에서 중량을 질량의 단위와 함께 표현하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사례는 특정분야의 잘못된 용어사용 습관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분야 내 특수성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만일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물질의 양을 협의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남아있다. 실제로 시중에서 판매하는 과자 봉지를 살펴보면 중량(무게)을 사용하지만, 국제통상 표준에서는 질량으로 표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 통용되는 측정표준의 국제단위계를 명확하게 준수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사용된 질량을 표현하는 '근'과 같은 비법정 단위는 2007년 법률에 명시한 정부의 노력으로 사용빈도가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제정된 국가표준기본법에서 '질량의 측정단위는 ㎏'이라고 명시하면서도, 질량을 측정하는 장치인 저울 제조 기준서는 전자저울이 '중량을 나타내는 장치'라 명시한 매우 역설적인 상황도 발견된다. 또 우리말 기준서라 할 수 있는 표준국어대사전 조차 중량을 질량과 같은 성격으로 뜻풀이하면서 그 단위를 ㎏ 등으로 잘못 명시하고 있다. 더구나 초등학교 수학과 교육과정에서는 무게를 질량의 단위로 소개하고 있다.
많은 과학적인 발견은 측정을 수반한다. 그 측정의 생명은 정확성에 있다. 2019년 5월 20일에 발효된 측정단위의 재정의를 계기로 새로운 세상에서는, 중량(무게)과 질량의 과학적 다름을 인식하고 올바르게 사용되길 바란다. 그리해 가까운 미래에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용하는 저울 계기판에 '중량 몇 그램'이라는 표현 대신 '질량 몇 그램'으로 표시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성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역학표준센터 책임연구원 lsjun@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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