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정보통신(IT) 기업 대상 세금 부과 기준을 만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도 디지털세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OECD 스스로 자신이 제시한 기준을 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국내 회계업계 일각에서는 나라별 최소 법인세율을 국가 간 합의로 정하는 최저한세와 같은 완전히 새로운 대안이 나올 것으로 분석한다.
28일 미국 법률전문 매체 로360(Law360)에 따르면 데이비드 브래드 베리 OECD 세무정책·통계 부서장은 최근 열린 내부 회의에서 디지털세 논의가 당초 계획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OECD 모든 회원국에서 시행되기 어려운 기준이라면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실무에 적용하기 수월한 간단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OECD는 올해 초 '디지털 산업 과세 보고서 초안'을 공식 발표했다.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다국적 IT 기업에 대한 세금(디지털세) 부과 기준을 찾기 위해서다. 현재 초안을 안건으로 회원국 간 공청회를 개최, 보고서를 정교하게 가다듬고 있다. 2020년 최종 보고서를 도출할 목표다.
초안 중 논란이 되는 부분은 '마케팅 무형자산'이다.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마케팅 무형자산을 구하는 계산 방식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지적이 지속 제기돼 왔다.
마케팅 무형자산은 연구개발(R&D)을 제외한 기업이 정상적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뜻한다. OECD는 다국적 기업 해외 사업장별 마케팅 무형자산을 모두 합친 뒤 기여도에 따라 나누는 이익분할법을 초안에 담았다.
브래드 베리 부서장은 “미국은 마케팅 무형자산 접근법에 지지를 표했지만 개발도상국 상당수는 이 기준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회원국 전체에 적용될 수 없다면 해결책이 아니다”고 밝혔다. 캐스 앳킨스 뉴질랜드 국세청 부국장도 “규칙은 간단하고 관리가 용이해야 한다”며 OECD 초안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국내 회계업계는 최저한세를 유력한 대안으로 꼽는다. 최소 법인세율에 대한 국가 간 합의가 전제되면 어렵지 않게 세금 징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라별 과세 형평에 부합하면서도 실무 적용에 유리한 현실적 해법으로 평가받는다.
국제연합(UN)도 디지털세 문제를 풀 방안으로 최저한세 도입을 제안했다. UN은 자체 조세조약 모델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80% 국가가 OECD 모델을 채택했지만 나머지 20%는 UN 조항을 따른다. 미국이 UN 진영에 속해있다.
임재광 법무법인 양재 회계사는 “OECD 대안이 당초 초안과 크게 달라질 것”이라며 “이 같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세계적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합리적 해결책으로 최저한세가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