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할 일만 끝나면 팀원이 야근을 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퇴근해요. 퇴근하면서 미안해 하지도 않아요. 회사 모꼬지(MT)를 가는데 장보는 것은 당연히 총무과 일이고, 함께 사용하는 사무실 청소는 당연히 청소 담당 직원 몫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알아서 챙기지 않아요. 회사라는 곳은 딱히 나누기 어려운 업무가 있는데 함께 조금씩 희생해서 해야 할 일들조차 특별 알바(아르바이트생)를 구해야 해요. 예전에는 상사가 앞에서 솔선수범하면 뒤에서 따라했는데 요즘은 으레 상사가 하는 일인 줄 알아요. 개취존(개인 취향 존중)이니 싫존주의(싫어하는 것을 존중하자는 주의)니 하면서 이기주의가 너무 심한 것 같아요”라고 선배는 후배에 대한 하소연을 한다.
반면에 “말하지 않아도 해 주길 기대하는 게 너무 불편해요. 명확하게 업무 분장을 해 주면 좋겠는데 괜히 눈치 보게 만들어요. 엄연히 입사할 때 업무가 분장돼 있었는데 자꾸 가욋일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해요. 우리 부장님은 상무님이 임원 자리를 별도로 만들지 말라고 지시하셨는데도 굳이 임원 상석을 만들고 의전을 신경 쓰세요. 상무님이 말은 저렇게 하시지만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라며 예의를 갖춰 드려야 한대요. 예의가 아니라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요”라며 후배는 선배에 대한 토로를 한다. 조직 충성도보다 자신의 삶이 중요한 후배와 회사 소속감으로 알아서 해 주길 바라는 선배의 간극이 크다. 간극이 큰 만큼 실망도 크고 섭섭함도 많이 쌓인다.
밀레니엄 세대는 꼼꼼하게 스펙과 학점 관리를 해 왔듯이 맡은 업무만큼은 예측 가능하게 안정된 형태로 하고 싶어 한다. 실패에 익숙하지 않아 실패할 일은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취향을 존중받기 원하고, 싫으면 참지 않는다. 그래서 개취존, 싫존주의라는 신생어가 나왔다. 반면에 선배 세대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기치 아래 맨땅에 헤딩하듯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개인 취향은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이제는 무엇이 내 취향인지조차 잊었다. 밀레니엄 세대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보람 따위는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는 태도로 직장을 다니는데 선배는 “시켜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챙기겠습니다”라던 자신의 말단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다. 상사는 분위기와 눈치로 의중을 알아차리길 기대하지만 후배에겐 의중 알아내기가 외국어보다 더 어렵다. 고맥락 문화에서 직장 생활을 해 온 선배와 저맥락 문화에 익숙한 후배는 같은 공간에 살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
미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문화를 넘어서'라는 저서에서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 개념을 제시했다. 글이나 말의 내용 자체가 중요한 저맥락 문화와 달리 고맥락 문화는 그 이면에 있는 맥락이나 배경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저맥락 문화에서는 의사소통을 위해 글이나 말, 매뉴얼과 지침이 중요하지만 고맥락 문화에서는 분위기 및 공기를 읽어야 한다. 선배 세대는 말한 그대로를 듣기보다 진의를 파악해 왔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고려해 자신의 뜻을 에둘러 전해 왔다. 그러나 후배는 140자 트위터와 컬러풀한 사진으로 소통하는 인스타를 하면서 자막까지 있는 짤영상을 유튜브로 보아 왔다. 친절한 참고서로도 부족해 꼼꼼히 짚어 주는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으며 공부했다. 역지사지는 고사하고 동상이몽이다. 선배와 후배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서로 통역이 필요하다.
조사에 따르면 전문가에게는 추상화된 일을 맡기는 게 성과가 높고 비전문가에게는 명확하고 구체화된 업무를 지시하는 게 결과가 더 빨리 나온다고 한다. 비전문가에겐 가구를 만들라고 지시해야 하지만 전문가에겐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해 보라고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사고를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다. 확대 해석하면 자신의 전문 업무 영역에서는 자율과 권한을 줘야 하지만 회사 공통에 해당하는 비전문 영역에 대해서는 명확한 룰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 개방적 공간과 개인적 공간의 균형을 맞춰야 업무생산성이 오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개방형 사무실이 협업을 부추길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오픈된 사무실은 집중해야 하는 업무를 방해한다. 서로 상호작용이 자유로움을 주지만 산만함도 주기 때문이다. 적당한 고립과 독립이 보장돼야 상호작용이 반갑고 기쁘다. 원치않는 개방성은 오히려 상호작용에 대한 희소가치를 떨어뜨리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처럼 조직환경이나 조직문화나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선배 세대는 무조건 끌고 가려 해도 안 되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해도 안 된다. 선배는 후배를 충성심 없는 이기주의 세대라고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자기중심 성향을 인정해 주면서 구체화시켜 요청해야 한다. 리더는 멀리서 손가락질하며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품고서 함께 가기 위해 방도를 찾는 사람이다.
배달의 민족의 사내 포스터엔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가 게시돼 있다. 그 내용 중에 '개발자가 개발만 잘하고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하면 회사는 망한다. 업무는 수직적, 관계는 수평적,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나는 일의 마지막이 아닌 중간에 있다' 등이 있다.
리더가 추구하는 바를 유머러스하고도 명확하게 표현했다. 싫존주의 후배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자율 권한 위임과 명시화된 행동 수칙에 밸런스를 맞추면서 외국어를 할 때처럼 분명하게 말하고 귀 기울여서 들어야 한다. 이러는 동안 리더는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노련한 균형감을 개발하게 될 것이다.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이사 toptm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