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과학자들이 독일 정부에 탈(脫)원전 정책 중단을 정식 요구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정책을 다른 국가에서 반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저탄소 발전원인 원전을 폐쇄하면 온실가스 배출 증가 등으로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질 거란 우려에서 비롯됐다.
4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폴란드 과학자와 환경보호주의자 등으로 구성된 단체 'FoTA4 클라이메이트'는 독일 정부·의회에 '원전 폐쇄 결정 재고'를 촉구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단체는 “글로벌 기후변화와 관련해 전례 없는 위협을 인지한 유럽연합 시민으로서 2011년 독일 정부가 내린 원전 폐쇄 결정을 재고할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앞서 독일 정부는 2011년 3월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가동 중인 원전 일부를 강제 폐쇄했으며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기하는 '탈원전 정책'을 선언했다.
단체는 지구온난화가 현재 속도로 지속하면 2030~2052년 사이에 지구평균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할 수 있다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발표를 인용, 이를 막기 위해서는 2030년 이전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이상 저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평균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면 인간이 생명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체가 독일 정부에 탈원전 중단을 요구한 것은 석탄발전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를 우려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 에너지 믹스에서 석탄 비중은 42.1%로, 재생에너지(32.6%)·가스(12.7%)·원전(11.8%)보다 높게 나타났다. 독일 정부는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년대의 60%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었지만, 이마저도 실패한 바 있다.
단체는 “원전을 폐지하면 결국 석탄·가스 발전량이 늘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탈탄소화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될 것”이라며 “획기적인 에너지 저장 기술을 개발해 재생에너지 간헐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라도 원전 폐지 결정을 재고, 지구평균온도 상승을 미리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탈원전을 추진하는 우리나라도 기후환경 변화 등을 고려한 정책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마리아 코르스닉 미국원자력협회(NEI) 회장은 “원전을 줄이면 국가 에너지 수급정책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며 “독일은 원전 감축 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독일 에너지전환 정책이 실패할 거란 평가를 받는 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석탄발전량이 오히려 2000년보다 증가했고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마저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수소경제 활성화 등 에너지 정책을 성공 이행하기 위해서는 비용·효과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이 있는지, 산업 진흥 효과는 계획대로 달성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객관적 정책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