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 프리뷰 <1권 1884~1989년>

<편집자주>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는 ICT 관련 시대별 대표 사건을 순차적으로 기록했다. 각 권이 포함하는 146개 소주제 리스트를 제시하고 이 가운데 주요 사건을 요약해 3회에 걸쳐 정리·제공한다.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 프리뷰 <1권 1884~1989년>

◆1960년대 이전: 통신강국 서막이 오르다

19세기에 조선은 근대국가로 발전했다. 특히 전기와 통신은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끈 효자산업으로 불린다. 1800년대 말 조그만 전구에서 쏟아지는 불빛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것을 '도깨비불'이라고 불렀다. 통신 기술은 19세기와 20세기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했다. 1896년 자석식 전화기 개통이 시발점이다. 1927년 경성방송국 개국은 라디오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미디어를 국민에게 선물했다. 1959년에는 우리 기술로 라디오를 생산하는 단계에 이른다.

◇근대국가 출발을 위한 고종의 노력…우정총국 개소

“각국과 통상을 한 이후로 안팎으로 관계되는 일이 날로 증가하고 나라의 무역 소식이 그에 따라서 늘어나고 있다. 체전(遞傳)을 합당하게 하지 못하면 원근의 소식을 모두 연락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정총국은 1884년(고종 21년·갑신년) 4월 22일(양력) 칙령에 따라 설립됐다. 우정총국 설립을 지시한 이날은 지금의 '정보통신의날' 이다. 우편은 군사와 더불어 고종이 가장 앞서 개혁을 시도했던 과제 중 하나다. 1881년 신식군대인 '별기군'에 이어 3년 만에 탄생한 우정총국은 조선말기 위로부터 개혁을 통해 근대국가로 나아가고자 한 개화운동 결실이다. 하지만 우정총국과 근대 우편제도는 개화파 몰락과 함께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됐다.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 프리뷰 <1권 1884~1989년>

◇'덕률풍'이 설치됐다고?…자석식 전화기 개통

우리나라에 전화기가 최초로 소개된 것은 1882년 영선사 유학생에 의해서다. 3월 유학생이 귀국하면서 전화기와 전선 100m를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있다. 1896년 10월 덕수궁 내 전화기가 설치됐고 덕수궁과 인천 사이에 전화가 개통됐다. 당시 전화기는 '덕률풍(德律風)'으로 불렸다. 'Telephone'의 중국어 음차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민간인을 위한 공중전화는 1902년 3월 개설됐다. 이어 개인 전화 가입자도 80명으로 늘었다. 전화기와 관련해 고종이 전화로 백범 김구 선생의 사형 집행을 정지시킨 일화가 유명하다.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 프리뷰 <1권 1884~1989년>

◇LG는 왜 전자회사를 설립했는가?…국내 전자회사 탄생

전자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1958년, 구인회 회장은 '빛나는 별' 이미지를 담은 금성사를 설립했다. “우리가 언제까지 미제 PX 물건만 사 쓰고 라디오 하나 몬 맹글어 되겠나!” 구인회 회장의 창업일성이었다. 금성사는 국내 첫 라디오 'A-501'을 만들며 국내 최초 전자회사 초석을 놓았다. 부품 국산화를 시도하며 기술력을 다지고 해외 생산기지도 개척했다.

◆1960년대: 전자산업의 시작

60년대 국내 경제는 정부 주도로 움직였다. 박정희 정부는 출범과 함께 경제성장에 집중했다. 정부는 과학기술처를 세우는 한편, 생활 곳곳에 과학기술을 스며들게 하는 기술강국 정책을 펼쳤다. 전자 분야 산업계도 진일보했다. 대덕산업이 최초로 단면 PCB를 생산했으며 김향수 아남산업 회장이 한국반도체를 시작했다. 1969년에는 삼성전자 전신 삼성전자공업이 출범했다.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 프리뷰 <1권 1884~1989년>

◇전자산업을 수출전략산업으로…박정희 등장과 전자산업

박정희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경제 성장을 화두로 제시했다. 1962년 경제기획원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외자유치에 나섰다. 자본과 기술을 갖춘 업체가 한국에 속속 상륙하면서 전자산업은 성장 계기를 마련했다. 제1차 경제개발계획 시기인 1960년대 고미, 페어차일드, 산요전기, IBM, 모토로라, 도시바 등이 한국에 상륙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65년 정부는 라디오와 전기기기를 13개 수출특화산업 가운데 하나로 지정하며 전자산업 육성정책을 펼쳤다.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 프리뷰 <1권 1884~1989년>

◇'스피드'가 생명이다…삼성전자 등장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외산 부품을 도입해 그것을 조립해 파는 초보단계였다. 이병철 삼성 회장은 전자산업이야말로 기술·노동력·부가가치·내수와 수출 전망까지 우리나라 경제 단계에 꼭 필요한 산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전자산업은 한국을 먹여 살릴 국가적 대사업이라고 설득했다. 박 대통령은 이에 동의하고 전자산업 시장을 전면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1969년 1월 일본 산요전기와 합작해 삼성산요전기가 만들어졌다. 삼성은 전자산업 진출 이후 빠르게 움직였다. 삼성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스피드'가 1970년대에도 가동됐다.

◆1970년대: IT강국 첫 삽을 뜨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정보통신산업 기반을 닦았다. 주요기업들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과학기술 발전사 상징이 된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됐다. 시장에서는 국내 첫 컬러TV가 이 시기에 개발됐다. 아남산업이 생산해 전량 수출했다. 국가 차원 정보화 작업이 진행된 점도 주목된다.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 프리뷰 <1권 1884~1989년>

◇연구원 땀으로 만든 연구소…대덕 연구단지 조성

대덕연구단지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상징이다. 연구기관을 한곳에 모아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다. 1971년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소장인 최형섭 박사가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본격 추진됐다. 대덕연구단지는 연구원 땀과 희생이 없이는 구축이 불가능했다. 인력이 부족해 연구원 한 명당 평균 주 80시간 이상을 연구에 매달려야 했다. 이렇게 탄생한 대덕연구단지는 우리나라 경제발전 원동력이 됐다.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 프리뷰 <1권 1884~1989년>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삼성·현대·럭키금성 반도체 사업 진출

“세계 각국 장기 불황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저가품 대량 수출에 의한 국력 신장은 한계에 이르렀다. 삼성은 부가가치가 높고 고도 기술을 요하는 첨단 반도체 사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이른바 삼성그룹의 '2·8 도쿄 구상'이다. 삼성은 관계사를 통해 반도체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1974년 12월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가 한국반도체 지분을 인수, 삼성반도체로 상호를 고쳐 운영했다. 정주영 현대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마쓰시타 고노스케 일본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 회장과 전두환 대통령의 권유 때문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 회장은 '큰 것뿐만 아니라 작은 것에서도 삼성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간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SK(선경)와 대우도 반도체 사업에 진출했다. SK그룹은 1978년 4월 경북 구미 전자단지 인근 반도체 전문단지에 입주 신청서를 제출하고 그해 10월 '선경반도체'를 출범시켰다. 김우중 대우 회장은 자동차 오디오 전문 수출업체 대우전자를 반도체와 컴퓨터 전문 업체로 변경하려는 작업을 시도했다. 1984년 6월 대우는 캐나다 노던텔레컴과 합작법인으로 '대우반도체'를 출범시켰다.

◆1980년대: ICT 발전 초석을 놓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다. 이 시기 전자·통신·인터넷·반도체 등 ICT 전 분야에서 강국으로 도약하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정부의 파격적 규제완화 정책과 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조화를 이뤘다. 한국전산원 설립과 한글 워드 프로세서 출시는 국가정보화와 산업 발전의 자양분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 프리뷰 <1권 1884~1989년>

◇세계에서 81번째…컬러TV 방송 시작

1980년 12월 1일 오전 10시 30분. KBS 제1TV는 '제17회 수출의 날' 기념식을 컬러로 생중계했다. 국내에도 컬러TV 방송 시대가 개막됐다. 세계에서 81번째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은 자주 입던 네이비나 푸른색 계열 정장 대신에 엷은 줄무늬가 있는 회색 옷을 입고 나왔다. 컬러TV 방영에 맞는 옷을 입어달라는 출입기자단 요청 때문이다. 컬러TV 방송은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한 전자산업 육성이라는 정책 차원에서 이뤄진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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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할 것인가 숨길 것인가…반도체 신화 시작

64K D램 개발을 완료한 후 한국 정부와 삼성은 공개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공개한다면 미국, 일본이 한국과 삼성을 경계할 것으로 우려됐기 때문이다. 6개월이라는 단기간에 개발을 완료라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삼성은 64K D램 개발 사실을 발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삼성이 64K D램을 생산하자 일본은 견제했다. 그리고 이는 미국이 일본 업체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는 사건으로 연결됐다. 미국이 일본 반도체 기업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는 사이에 일본 256K D램 투자와 생산에는 공백이 생겼다. 삼성에게는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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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대 국책과제…TDX 개발 성공과 디지털통신망 완성

국산 전전자교환기 TDX 개발성공은 국내 ICT산업 발전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연구개발 사업 규모면에서 단군 이래 초대형 국책 개발 사업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국내외 ICT 산업계를 놀라게 했다. TDX 개발은 이후 M-DRAM 반도체, 중형컴퓨터, CDMA이동통신시스템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동력을 제공했다. TDX 개발 성공으로 극심한 전화 적체난을 해결하고 국가기본통신망을 첨단 디지털 방식으로 조기 완성하는 전기도 마련했다.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 프리뷰 <1권 1884~1989년>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산업발전사』

전자신문 지음

쪽수: 1권 280쪽, 2권 254쪽, 3권 223쪽

사이즈: 218*275mm

발행일: 2019년 6월 1일

세트가(3권): 150,000원

문의 : https://www.eted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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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원 SW콘텐츠부 데스크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