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연구 초기에 연구자 대부분이 저분자 OLED가 옳다고 보고 이 분야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은 계속 고분자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약 30년이 지나서야 고분자 OLED가 잉크젯 프린팅 소재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만약 고분자 OLED가 상용화되면 혼자서 이 분야에 집중해 온 일본이 시장을 독식하게 될 겁니다. 한국 기업이라면 혼자서 30년 동안 연구개발(R&D)을 할 수 있을까요?”
한 대학 교수는 우리나라가 소재 원천 기술에 취약한 이유를 일본의 R&D 사례에 빗대 이같이 설명했다.
소재는 기본적으로 10년 이상 R&D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기술 난도가 높다. R&D 2~3년 안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포기하는 경향이 짙은 한국의 기업 문화 특성상 유독 소재 산업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이 반도체·디스플레이 강국이지만 정작 제품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부품·장비의 경우 일본을 포함한 외산에 의존하는 현실은 10여년 동안 지적돼 온 일종의 '고질병'이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품목으로 내건 3대 재료 가운데 하나인 불화폴리이미드의 경우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가 이미 국산화,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이 재료는 정부가 세계 시장을 선점할 10대 핵심 소재 개발인 '세계일류소재개발(WPM)' 사업을 바탕으로 상용화 수준까지 올 수 있었다. 기업이 초기 개발을 시작하고 정부가 파격적인 지원으로 힘을 실은 좋은 선례다. 예상보다 상용화 시점이 늦어지면서 관련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경영자의 뚝심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밀어붙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재뿐만 아니라 핵심 부품, 장비 부분품, 장비 등 분야에도 국산화가 절실한 분야가 많다. 다행히 정부는 매년 1조원을 투입해 부품·소재·장비 국산화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씁쓸하지만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는 소재·부품·국산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한 소재기업 관계자는 “한국 소재기업의 실력이 아직은 부족하지만 수요 기업과 힘을 합치면 실력은 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소재 독립'은 오랜 인고의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의지에 달렸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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