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근거리전용무선통신(DSRC)' 중심으로 '차세대 지능형교통정보(C-ITS)'를 구축하려던 계획이 무산되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차량·사물 간 통신(V2X)' 관련 대응에도 비상이 걸렸다. 우리 업계는 DSRC와 V2X(C-V2X)에 대한 개발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최근 EU가 C-ITS 표준을 DSRC로 하겠다는 법안을 거부하면서 C-V2X 관련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초 현대차는 2021년 DSRC 기반 V2X 기능을 상용화 하고, C-V2X에 대한 개발은 5세대(5G) 통신에 대한 검증을 거친 뒤 순차적인 개발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V2X는 결국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선행 기술 개발보다 안정화 작업이 더욱 중요하고, 이는 통신 표준이 결정돼야 본격적인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DSRC와 셀룰러를 모두 개발하고 있어 큰 틀에서 변화는 없지만 C-V2X도 글로벌 트렌드(흐름)에 맞춰서 개발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EU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는 지난 4일 DSRC 중심으로 C-ITS 체계를 구축하려는 EU행정부 법률안을 최종 부결시켰다.
EU 각료이사회 투표에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기존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조성한 국가들도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는 EU 회원국 역내 모든 V2X 표준을 DSRC 중심으로 규정한다는 취지에 C-V2X 진영의 반발이 컸던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DSRC만으로 C-ITS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법안을 부결시킨 것이지, C-V2X가 유럽 C-ITS 통신 표준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면서 “C-V2X 진영이 '기술중립성'을 근거로 기존 법률안을 부결시켰기 때문에, 한 가지 방식으로 C-ITS 표준이 정해질 확률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향후 V2X 법제화 관건이 여러 통신방식을 혼용해 사용할 수 있는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또는 '공존성(Co-existence)'을 확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5.9㎓ 대역 같은 채널에서 DSRC와 셀룰러를 상호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 방식을 다른 채널에서 운용하는 것이 대안이지만, 아직 실증 결과가 없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V2X 개발에 있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유럽이 사실상 'C-ITS'에 손을 들어주면서 국내 V2X 표준도 DSRC보다 C-V2X에 힘이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12년 5.9㎓ 주파수 대역의 웨이브로 표준화를 진행했고, 일부 시험 도로와 자율주행 실증도시인 K시티에도 DSRC V2X 인프라를 구축했다. 때문에 자동차 업계는 DSRC 중심으로 기술 개발을 해왔고, C-V2X 기술 개발은 뒤쳐진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V2X 관련 세계 표준이나 시장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는 DSRC와 C-V2X를 병행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부품업계도 두 가지 통신 방식을 모두 연구·개발하고 있다. 다만 기술개발에 많은 투자가 불가피해졌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