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5일 개봉 예정인 애니메이션 영화 '레드슈즈'가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출신 김상진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 할리우드 유명배우 클로이 모레츠와 영국배우 샘 크라플린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제작비 220억원, 총 제작기간 10년을 들였다. 중요한 부분은 이 영화가 한국에서 제작된 토종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다.
최근 서울 신사동 로커스 본사에서 만난 김형순 로커스 회장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 역량을 갖춘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작품”이라며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 이런 작품은 없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일본이 2D '아니메' 시장을 잡았다면, 한국은 3D 애니메이션으로 또 다른 축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레드슈즈는 로커스 스튜디오가 제작했다. 시나리오는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대상 수상작인 '빨간 구두와 일곱 난쟁이'를 각색했다. 동화 백설공주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야기다.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렸다. 세계 관객에 친숙한 소재를 택했다.
김형순 회장은 벤처 1세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90년 콜센터 사업 등을 시작으로, 계열사 17개를 운영하며 시가총액 2조원을 달성했다. 연예기획사 싸이더스도 창립했다. '연쇄창업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냐는 질문에 그는 크게 웃었다.
“창업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그게 제 직업이라고 농담처럼 얘기하곤 합니다. 로커스, 싸이더스를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창업했습니다. 이 비즈니스 자체가 산업에 의미있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샘솟습니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2009년 설립했다. 애니메이션 미래를 밝게 봤다. 실사영화와 달리 언어와 문화권이 다른 지역 관객도 거부감이 적다. 김 회장 역시 '몬스터 주식회사'와 '코코'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국내 작품이 세계 상업시장에 진출하기 용이하다는 의미다.
특히 3D 애니메이션은 예술과 정보기술(IT) 융합체다. 소프트웨어(SW)나 하드웨어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좋은 질의 작품이 더 빨리 제작된다. 김 회장은 “기술 발달로 곧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라며 “지금도 실사 영화에 굉장히 많은 시각 효과가 들어간다. 장소 제한이 없어져 창조 범위가 크게 확대되는 시대가 온다”고 내다봤다.
한국인 중에는 손재주 좋고 유명한 애니메이터가 많다. 그러나 국내에는 제대로 된 제작 '파이프라인'을 갖춘 스튜디오가 적다. 모델링, 맵핑, 애니메이팅, 라이팅 등 협업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고도화된 파이프라인 세팅이 필수다. 진입 장벽도 높다. 영화보다 무거운 SW와 장비가 필요하다. 주요 국내 인재들은 국외로 나가야 했다.
김 회장은 “로커스 파이프라인을 세계 수준으로 고도화했다”며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렌더 팜(컴퓨터 클러스터)은 3만3600코어 규모로 구축됐다. 전체 스토리지 시스템은 5페타바이트(PB, 5GB의 100만 배)에 달한다. 자체 개발한 파이프라인 관리 SW '록맨'도 있다.
첫 작품은 10년이 걸렸지만, 차기작은 스토리만 확보되면 1년 반이면 내놓을 수 있다. 레드슈즈는 로커스 명성을 알리는 선봉 역할을 한다. 세계 시장에 안착하면 '한국형' 애니메이션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레드슈즈 시사회 반응 중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한류 붐을 일으키는 것이 저희가 바라는 바입니다. 관객들이 작품의 재미도 즐기면서, 우리 애니메이션이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고 어떤 미래 가능성이 있는지도 느껴봐주셨으면 합니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