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줄 알았던 태양에 끝이 다가온다. 지구에도 온갖 재난이 발생한다. 인류는 멸망 위기에 처한다. 재난을 이겨내고 살아남는다 해도 적색거성화하는 태양에 지구가 삼켜질 판이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처를 옮겨야 한다. 태양계 내에서는 답이 없다. 다행히 4.37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계가 유력한 대체지로 떠오른다. 그곳에 무사히 도달하기만 하면 인류는 다시 종의 번영을 이룰 수 있다.
그동안 접해온 대부분 SF영화 공식대로라면 이제 우주를 항행하는 대규모 이주선단이 나올 차례다. 하다못해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데스스타' 같은 인공행성 정도가 상상 가능한 범위다.
'유랑지구'는 영화 제목 그대로 지구 자체를 통째로 옮긴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든 생각은 “말도 안 돼”다. 거대한 지구를 어떻게 옮기냐를 떠나 우리가 땅에 발을 딛고 서있을 수 있게 해주는 중력 문제부터 지표면의 대기나 물은 어디로 가는지 등 따지고 들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휴고상을 수상한 중국 작가 류츠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유랑지구는 터무니없게 들리는 아이디어에 나름의 과학적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실존하는 우주 과학 이론과 어렵게 들리는 용어를 적절히 가미해 관객을 설득한다. 화려한 그래픽 효과까지 더하니니 '중국' 영화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불식된다.
스토리에는 중국이 꿈꾸는 '우주굴기'에 대한 중국몽이 여실히 담겼다. 언제나 인류를 구해왔던 미국인의 자리에 오성홍기가 어깨에 선명한 중국인이 자리했다. 모두가 포기한 상황에서 세계인의 단합과 참여를 동양적인 정서를 통해 중국인 중심으로 이뤄낸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히 봐온 클리셰이지만, 주인공이 중국인이라 막연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실제로 중국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인정하는 우주 강국이다. 올해 초에는 달 탐사선 창어 4호를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내년을 목표로 화성 탐사선도 발사도 준비 중이다. 중국인이 영화 '유랑지구'에 열광한 것도 미국 등 서구권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 자국 우주과학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반영됐다.
아폴로 11호가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지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도 1992년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를 시작으로 나로호, 누리호 개발 등 우주과학 역량을 키워오고 있다. 최근 2019년도 우주개발진흥 시행계획'도 확정하고 우주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한다.
유랑지구 말미에 스치듯 한국인의 모습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무섭도록 빠르게 추진되는 중국의 우주굴기 앞에서도 계속 조연으로만 남게 되는 건 아닐지 입맛이 씁쓸해진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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