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에 따른 국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낸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 이후 처음 성사된 한일 양자 실무협의에서 한국을 '화이트국가(백색 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약 1100개 품목이 수출규제 영향권에 속할 가능성이 생기자 한층 더 광범위한 대응책 모색에 초점을 맞춘다. 정부는 대일 의존도가 큰 소재부품 개발 사업을 전방위 지원하고, 일본의 추가 보복 등 장기전에 대비해 '상응 조치'까지 적시에 꺼낼 수 있도록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추경 금주 내 통과 총력…세제 지원·규제 완화도 검토
정부는 국회에서 심의 중인 추가경정예산(추경) 안에 일본 수출규제 대응 예산을 최대 3000억원 증액하기로 했다. 빠르면 이번주 초 구체적인 사업 목록을 확정할 방침이다.
앞서 기획재정부가 소재부품 관련 긴급소요 예산을 취합한 결과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3개 부처에서 1214억900만원을 요청했다. 이후 관계 부처들과 협의하면서 금액이 더 늘어나고 있다.
기재부는 “일본 수출규제 문제에 대한 업계 우려가 심각해지면서 관계 부처가 지원 사업을 추가 발굴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은 추경예산 증액도 수출규제 3대 품목에 한정하지 않고 추가 규제가 예상되는 품목에 대해 기술개발·상용화·양산단계 지원 예산을 포함하기로 했다. 대일 의존 상위 50개 과제에 대한 소재부품 R&D 예산도 반영하기로 했다.
기재부는 일본 수출규제 품목에 대한 세제 지원책도 준비하고 있다.
일본 규제 대상에 오른 3대 품목 중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를 신성장동력·원천기술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추가 규제 품목도 업계 건의가 있으면 적극 검토해 세액공제를 해줄 방침이다. 시스템반도체 제조·설계 기술도 세액공제 대상에 추가하기로 했다.
아울러 소재부품 개발사업과 관련한 인허가가 필요하면 행정절차를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할 방침이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생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화학물질 생산 규제 완화와 R&D 분야 주52시간 근무제 특례(선택적 근로) 확대도 살펴보고 있다.
◇화이트국가 제외 대비한 '상응조치' 검토
정부는 이번 사태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뿐만 아니라 전 산업으로 확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자동차와 정밀화학 등 다른 산업계 상황을 세부 점검하고 일본이 타깃으로 삼을 만한 100대 품목을 따로 추려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면 해당 고시는 다음달 20일을 전후해 발효될 전망이다. 이 경우 거의 모든 산업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 절차가 대폭 까다로워져 우리 기업 피해가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는 WTO 제소 방침 외에는 전략 노출을 피하기 위해 말을 아껴왔지만 추가 보복이 이어질 경우 구사할 상응 조치를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상응 조치로는 주요 품목의 대일 수출을 제한하거나 일본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일본처럼 한국의 화이트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국의 화이트국가는 일본을 포함한 29개국이다.
다만 정부는 여전히 국제사회와 공조해 일본이 수입 규제 조치를 철회하는데 최우선 방점을 두고 있다. 우리 정부의 맞대응이 양국 간 경제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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