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무역분쟁 속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행보가 숨 가쁘다. 열흘간의 일본 출장을 마친 신 회장은 귀국 하루 만에 하반기 사장단 회의에 참석했다. 일본 수출규제로 점화된 불매운동의 여파가 롯데로 번지고 있는 만큼, 신 회장이 풀어낼 메시지에 이목이 집중된다.
16일 신 회장은 하반기 사장단 회의(VCM)를 주재하기 위해 이른 오전부터 롯데월드타워에 모습을 드러냈다. 굳은 표정의 신 회장은 일본 출장 성과와 한일관계 가교역할, 불매운동 여파 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침묵한 채 집무실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손사래를 치며 대답을 하지 않겠다는 제스처도 보였다. 한일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본인의 역할론이 대두된 데에 부담을 느낀 기색이 역력했다. 입을 굳게 다문 이영호 식품BU장, 조경수 롯데푸드 대표 등 계열사 사장단 얼굴에도 비슷한 기류가 흘렀다.
신 회장의 경영방침은 닷새간 진행될 사장단 회의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점쳐진다. 신 회장은 경제보복 이슈가 불거진 지난 5일 일본으로 떠나 노무라증권과 미즈호은행 등 현지 금융권 관계자와 관·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 국내 분위기를 전하고 현지 기류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신 회장이 일본 출장의 성과를 사장단과 공유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룹 수장으로 경영 불확실성을 타개할 묘책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재계 역시 일본에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신 회장에게 한일 관계를 해소할 가교 역할을 기대하는 눈치다.
특히 롯데는 이번 무역분쟁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유니클로나 무인양품, 롯데아사히주류 등 일본과 합작사가 즐비한 데다 지분도 직간접 얽혀 있어 불매운동의 영향을 받고 있다. 반도체 수출규제의 불씨가 금융권으로 옮겨 붙을 경우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이 일본 출장 기간에 롯데와 거래하는 금융권을 위시한 다양한 관계자를 만나고 온 만큼, 사장단 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공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첫 회의에는 식품 사업부문(BU) 13개 계열사 대표들이 참석해, 상반기 실무적 성과에 주안점을 두고 각 사업부문별 중장기 전략을 집중 논의했다. 제과·칠성·푸드 등 식품 주력 계열사 대표들은 향후 5~10년을 내다본 구체적인 로드맵과 신제품 연구개발 계획 등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BU에 이어 17일부터 유통·화학·호텔BU의 회의가 이어진다. 신 회장은 닷새간 총 40시간 이어지는 마라톤 회의를 직접 주재한다. 마지막 날인 20일에는 58개 계열사가 한데 모여 그간 논의된 내용을 공유한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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