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김없이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부가 바라는 '혁신'이 무엇인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불만이 금융권에 팽배했다.
키움증권·SK텔레콤·하나은행 등 내로라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금융기관, 전자상거래업체 등과 손을 잡고 인터넷전문은행 출사표를 던진 키움뱅크 컨소시엄은 앞서 한 차례 고배를 들이켰다. 사업 계획의 혁신성이 부족하다는 금융 당국의 낙인까지 찍혔다.
친절하게도 이번에는 신규 인가를 도전하는 신청자에게 금융감독원이 인가 컨설팅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족집게 과외 선생님처럼 시험 기출 문제라도 찍어 줄 모양이다.
정부의 혁신 기준이 그다지 높지는 않아 보인다. 공공기관이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서 자랑하고 있는 경영 혁신 사례만도 2014년부터 올해까지 벌써 1200건이 넘는다. 올해 이미 100건 이상의 경영 혁신이 공공기관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혁신 강박에 빠진 듯 하루가 멀다 하고 혁신을 외치고 있다. 일하는 방식 혁신, 디지털 공공서비스 혁신, 열린정부 혁신 등 부처마다 혁신 행보에 한창이다.
이처럼 사소한 제도 개선 사항 하나하나를 혁신으로 여기는 정부이니 외부평가위원회와 엇박자를 내는 시각 차이가 크게 놀랍지도 않다. 공무원에게는 혁신으로 여겨지는 많은 일이 외평위원과 소비자에게는 혁신으로 다가오지 않는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혁신으로 인한 피로감을 느끼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에 예비 인가를 받던 당시만 해도 비대면 계좌, 통신 데이터 기반 대출 심사 등은 혁신 서비스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금융권 전반으로 핀테크 기업과 ICT 기반 빅테크 기업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단순히 신기술과 금융을 결합한 것만으로는 혁신을 논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이미 한 차례 쓴잔을 들이킨 기업이 신규 인가 재추진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다.
국회의 입법 취지와 정부의 정책 기조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기업의 혁신 의지다. 지나친 압박으로 혁신 기업에 피로감이 들게 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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