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변호사
중소벤처기업의 대표들에게 법무법인으로부터 ‘경고장’을 받은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대표에게 경고장을 받은 경위를 물으면 대부분의 대표들이 이유를 말하기 곤란해 한다. 수일이 지나면 대표들로부터 여지없이 연락이 오는데 내용을 확인해보면 그 ‘경고장’에 관한 이야기다.
그 ‘경고장’은 다름 아닌 소프트웨어 저작권자가 라이선스 위반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을 적은 서류였다. 경고장은 내용증명으로 오는 경우도 있으나, 단순히 직원 e-Mail을 통해 오는 경우도 있어 처음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다 나중에 일이 커지고 난 후 수습에 애를 먹는 경우도 자주 목격한다.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271개의 기업에 대하여 SW 라이선스 위반 혐의로 점검이 실시되었고 그 중 190개 기업에서 실제 라이선스 위반사실이 적발되었고, 이중 대부분이 중소벤처기업이었다고 한다. 중소벤처기업에서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중소벤처기업은 시장에서 생존이 최우선 목표이므로 SW 저작권 또는 라이선스에 대해 소홀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 지식재산권 및 SW 자산 관리에 대해 중요성을 인지한 일부 기업은 종종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패키지SW를 구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벤처기업은 소속 직원들이 라이선스 없는 서비스SW를 사용하는 것까지 점검할 여력이 없다.
실제 SW자산이나 지적재산권을 담당하는 인력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고, 업무에 필요한 모든 SW를 구입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SW라이선스는 중요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SW라이선스에 대한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은 중소벤처기업은 SW 저작권자로부터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장을 받게 되면 십중팔구 당황하게 된다. 경고장은 단순 통지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자체만으로는 법률적 효력이 없지만, 중소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손해배상’, ‘고소·고발’ 등 강경한 법률용어와 함께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는다는 문구를 보면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중소벤처기업은 경고장에 대해 충분한 검토 없이 대응을 하여 소송에서 불리할 수 있는 증거를 스스로 만들어 주는 경우가 있다. 구체적인 예로 중소벤처기업 A의 직원인 OO가 서비스SW 저작권자로부터 경고장 e-Mail을 받았는데, OO가 해당 서비스SW 사용을 인정하며 앞으로 사용하지 않고 지우겠다고 답변을 한 것이다.
서비스SW 저작권자가 A사를 상대로 라이선스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소송을 제기하면 OO의 답변은 A사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것이다. 만약에 OO가 답변 메일일 A기업 경영진을 참조하여 보냈다면 불리한 증거의 힘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또한 지레 겁을 먹고 저작권자의 요구를 무분별하게 수용해 기업 경영이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있다. B기업은 디자인 사업을 영위하는 소규모 회사인데, 디자인 패키지SW 무단 복제하여 사용해왔다. 무단 복제가 잘못되었음을 알았지만 업계의 관행으로 여기며 디자인 패키지SW 사용한 것이다. B사는 정부지원 사업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성과를 내기도 하여 정부부처의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표창을 받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 되고 몇 일뒤 법무법인으로부터 SW라이선스 위반 경고장을 송달받게 된다. 경고장 내용에는 B사가 저작권법 제141조 위반으로 민·형사상 책임이 있으므로, 법무법인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B기업의 대표는 무단 복제 SW 사용 법률 위반임을 인지하고 있던 터라 법무법인의 감사를 수긍하게 된다.
결국 법무법인은 감사 결과 B기업이 PC 3대와 노트북 3대에 무단복제 SW 사용하고 있으므로 SW저작권자에게 도합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업계에서 실력을 쌓아 가고 있던 B기업은 해당 손해배상을 지불할 능력이 되지 못해 이 건과 관련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사건에서 B사가 경고장에 신중히 대응하였다면 결론은 달라졌을 것이다. 특히 저작권자에 의한 감사에 대해 수긍할 B의 법률상 의무가 없음에도 충분한 검토 없이 이를 응하여 큰 위험을 키운 점은 주의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그럼 경고장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기업에게 좋을까? 무조건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 SW라이선스 분쟁은 대상 SW의 종류 및 제공방식, SW사용목적, 사용규모, 사용자, 해당 SW의 필요성 등에 따라 대응 방법과 절차가 천양지차이므로 충분한 검토 통해 대응을 해 나가야한다. 이를 위해선 전문가의 자문을 통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나 아래에선 기업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접근법을 제시한다.
첫째. 경고장의 작성 주체와 앞으로 저작권자의 저작권 행사 방식을 확인한다. 우선, 해당 SW의 저작권자와 이를 대리하는 법무법인(또는 변호사)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면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저작권자를 대리하는 업체가 법무법인(또는 변호사)가 아닌 경우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전사의 PC를 검사하여 경고장에 적시된 라이선스를 위반한 PC의 수를 확인 하고 손해배상 규모를 대략적으로 추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저작권자와 협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노트북도 포함한다. 라이선스 위반 SW 점검은 한국저작권보호원에서 출시한 인스펙터 Lite는 무료이므로 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셋째. 해당 SW의 라이선스에 대해 차분히 살펴본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SW종류에 따라 대응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SW 설치 시에 활성화되는 약관도 다시 꼼꼼히 체크하고, 경고장의 내용과 라이선스 약관에서 상이한 점을 표시해두면 나중에 분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넷째, 경고장에서 제시하는 라이선스 구입비용에 대해 검토해 본다. 저작권자 또는 대리인은 우선 상당히 큰 액수를 적시하여 경고장을 보내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저작권자 입장에서는 라이선스를 위반한 기업에 대해 정확한 침해 금액을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사 저작권자가 SW에 무단으로 IP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숨겨 놓아, 이를 바탕으로 IP를 추적했다 하더라도, 소송절차에서 위 증거는 법적 증거로서 사용이 제한 될 수 있으므로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다섯째. 해결방식의 선택을 검토하자. 저작권자와의 합의(라이선스 구매), 소송, 분쟁조정 절차(ADR)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와의 합의가 매끄럽지 성사되지 않을 경우 법률전문가와 상의하여 소송 또는 분쟁조정 절차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강조하지만, 중소벤처기업은 SW 라이선스를 위반하여 SW를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지식재산권 분쟁의 위험을 예방하려면 자사 SW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우선, 회사 차원에서 SW 사용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무단복제SW 및 라이선스 위반에 대해 개인책임을 진다는 각서를 받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만 저작권법 제141조에 따른 양벌규정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추가적으로 정기적인 개인 PC의 SW 점검을 통해 사전에 SW의 무단 사용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여력이 있다면 SW 담당 인력을 두고 SW 대장을 작성하고 관리한다면 기업의 위험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인력 한명이 소중한 중소벤처기업에게 대기업에서나 할 수 있는 SW관리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넘어가야 할 산이라면 자사 인력 일부가 소프트웨어자산관리사라는 자격을 취득하게 하여 체계적인 관리의 기준점을 삼아야 할 것이다.
4차산업혁명시대에 제조업만이 아니라 SW도 다품종 소량의 시대가 예상된다. 이러한 SW 범람의 시대에서 중소벤처기업 입장에서는 소속 직원이 사용하는 서비스SW의 라이선스까지 챙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SW 라이선스를 관리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SW 라이선스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저작권자로부터 라이선스 위반 경고장 받는 위험은 물론이고 라이선스 분쟁이라는 기업의 명운을 좌지우지하는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소벤처기업은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한국저작권위원회 등의 기관에서 시행하는 교육과 자격검증을 통해 SW 라이선스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