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지난달 일본에 사실상 특사 성격의 고위 인사를 두차례나 보냈지만 일본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본측은 한미일 협의와 미국 중재안 등도 모두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청와대에서 상황설명 브리핑을 열고 “많은 분들이 왜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특사 파견을 하지 않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며 “이미 우리 정부 고위 인사의 파견은 7월 중 두 차례 있었다”고 밝혔다.
김 차장에 따르면 당시 우리측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제안하는 데 8개월이 소요된 이유를 설명하고 일본 측이 요구하는 제안을 포함해 모든 사안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논의할 의향이 있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우리측은 강제징용 문제 등 일본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과 지속적인 대화를 제의했지만 일본은 번번이 거부했다고 전했다. 특히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한일 양국의 수출통제 제도의 국제기구 검증 제안(7.12) △산자부-경산성 담당 국장간 협의 요청(7.16) △WTO 일반이사회에서의 수석대표간 1:1 대화 제안(7.24) △RCEP 장관회담 제안(7.27) 등에 대해서도 일본은 모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역시 한일간 외교적 해법을 촉구했으나 일본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김 차장은 “일시적으로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를 동결하고 일정기간 한일 양측이 외교적 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할 것을 제안하는 현상동결합의(standstill agreement)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며 “우리측은 이러한 방안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일본과의 협의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 일본 측은 현상동결합의 방안에 관해서도 즉각적인 거부 입장을 표명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차장은 “이러한 우리의 지속적인 외교적 해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양국간 신뢰 관계 손상, 전략물자 밀반출, 수출규제 관리 등 이유를 계속 바꾸어가며 결국 오늘 백색국가에서 우리를 배제하는 조치를 취했다”며 “지난 수십 년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했던 우리를 안보상의 이유를 핑계로 동 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은 우리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차장은 “정부는 우리에 대한 신뢰 결여와 안보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포함하여 앞으로 종합적인 대응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상응조치'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의 연장 거부 카드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청와대가 지소미아 연장 거부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차장은 “윈스턴 처칠은 생전에 '싸워본 나라는 다시 일어나도,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나라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고 했다”며 “이제는 '가마우지 경제체제'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마우지 경제체제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핵심 소재와 부품을 수입하면서, 한국이 완성품을 수출해도 이득은 결국 일본에 돌아가는 체제를 뜻한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