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중독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평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했던 사람이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인해 건강을 잃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사회적 폐인이 되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당뇨병 환자나 고혈압 환자가 약을 복용함으로써 혈당과 혈압이 조절되어 정상화되고 생활을 잘 할 수 있다면, 치료되고 있다고 해야 할 일이지 결코 중독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다시 혈당이 올라가고 혈압이 올라간다고 해서 그것이 약에 중독되었다고 할 수 없다.
또한, 공황장애 환자나 우울장애 환자가 그에 맞는 정신과 약을 복용함으로써 평안을 찾고, 부정적 관점에서 벗어나고 자살로부터 자신의 가치와 생명을 지켜내고 행복을 찾는다면, 치료되고 있다고 해야 하고 좋아해야 할 일이지 결코 중독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다시 공황 증상이 나타나고 우울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이 약에 중독되었다고 할 수 없다.
알코올이나 마약이 뇌를 손상시키는 것과는 달리 현재 사용되는 항공황제제, 항우울제제는 오히려 뇌신경세포의 신생을 돕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약으로 어떻게 당뇨 또는 고혈압을 치료하느냐”, “당뇨나 고혈압은 의지나 정신력으로만 고쳐야지”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정신과 질병에 대해서만 달리 생각하는 태도는 정신과 의사인 나로서는 몹시 안타깝다.
당뇨병과 고혈압은 하나의 신체 질병이다. 공황장애와 우울장애 등 정신과 질병도 하나의 뇌의 질병이다. 뇌도 신체의 일부이다.
지금 공황장애, 우울장애 뿐만 아니라 많은 정신과적 질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과 약이 중독된다는 편견으로 인한 불충분한 치료(under treatment)이다.
사람들은 왜 정신과 약을 먹으면 중독된다고 생각할까?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하면 중독되어 약을 끊지 못하고 평생 먹어야 한다는 두려움의 표현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물치료로 인해 중독되어 약을 끊지 못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벤조디아제핀계 약물들은 약리학적으로 내성과 신체적 의존성이 있어 약물 사용에 유의할 필요가 있으나, 올바른 처방 가이드라인을 지킨다면 문제되지 않는다.
세계 최고 권위의 임상의학 학술지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임상에서 그 효과를 얻기 위해 약을 계속 늘려가야만 하는 내성의 증거가 없다.”라고 했다. 또한, 미국정신과학회 특별위원회의 보고서에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 올바른 처방 가이드라인이 지켜졌을 때 중독되는 약이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받는 경우 약물중독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 공황장애 환자와 우울장애 환자의 적절하고 충분한 치료를 도와야 할 가족과 지인들이 “정신과 약은 중독이 되어 약을 끊을 수 없다”라는 등의 무책임한 말들로 환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공황장애 환자들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불안하고 우울장애 환자들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정신과 약에 대한 겁나는 말을 들으면 치료를 시작하지 않거나 먹던 약도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별 생각 없이 뱉은 무책임한 말들은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막거나 재발하게 하는 결과적으로 환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다.
오늘 필자가 드리고 싶은 말은 정신과 약이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정신과 약만을 맹신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지나친 거부감은 더 문제이다. 정신과 약을 편견(偏見)으로 보지 말고 정견(正見)으로 보자.
사공정규 교수는 의학박사,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이며, ‘문장’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동국대학교 심신의학연구소장, 교육부 위(Wee)닥터 자문의 대표, 사단법인 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이사장으로 재임 중이며, 하버드의대 임상연구원과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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