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에너지 분야에서 '탈 일본' 움직임이 시작됐다. 정부와 발전 공기업 등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 결정에 따라 국내의 모든 발전소에 적용된 발전 기자재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일본산 발전 기자재는 가스터빈 등 최소 35종에 이른다. 이번 전수조사는 예측 불가능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동시에 발전 기자재 '국산화'를 본격 추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6일 “지난 주말 각 발전사에 발전 기자재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청했다”면서 “이는 국내 발전소에 적용된 발전 기자재 가운데 일본에서 수입한 품목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본산 발전 기자재 품목뿐만 아니라 재고 및 대체 공급처 현황도 함께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수조사는 한국수력원자력을 포함한 발전 6사와 민자발전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원자력 △석탄화력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 △태양광·풍력 △양수(소수력) △연료전지 등 모든 발전소가 대상이다. 그동안 허가가 필요 없던 '대형 발전기'도 일본 캐치올 규제 대상에 포함, 단기적으로는 에너지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발전 기자재 국산화·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비롯됐다.
발전 공기업에 따르면 지난 5일까지 파악된 일본산 발전 기자재는 35종이다.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가스터빈 △순환수펌프 △탈질촉매 등으로 파악됐다. 전수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산 발전 기자재 가짓수는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미쓰비시 가스터빈(M501 J형) 등은 국내 다수 발전소에 적용된 대표적인 일본산 발전 기자재다. 미쓰비시는 2012년 한 해에만 우리나라에서 △율촌발전소(2기) △신평택발전소(2기) △동두천발전소(4기) △신울산발전소(2기) 등 가스터빈 10기를 연속 수주한 바 있다. 또 히타치는 당진화력발전소, 태안화력발전소 등에 순환수펌프를 납품했다. 질소산화물을 제거하는 탈질촉매도 일본에서 수입하는 비중이 여전히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일본의 첫 수출 규제 조치에도 동요하지 않던 에너지업계는 백색국가 한국 배제 결정 이후 '한·일 경제전쟁'이 장기화될 것으로 판단, 발전소에서도 탈 일본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품목 확대에 대한 불확실성에 개의치 않고, 국산화 또는 대체품 공급처 다변화 등 전략을 수립해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발전 공기업 고위 관계자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서라도 일본산 발전 기자재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면서 “에너지는 국민 이익과 직결되는 '국가 백년대계'라는 점을 고려,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지 못하면 산업 전반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원자력 분야에서 일부 협력사가 제한적인 소재를 수입하고 있지만 수입처 대체가 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면서도 “일본이 도발한 날, 2019년 8월 2일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꼭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