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20대 핵심 품목을 포함한 100대 품목에 매년 1조원 이상 집중 투자, 관련된 주요 핵심 품목에 대한 대외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기술력에 기반을 둔 공급망을 확보한다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고순도 불화수소, 리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로 시작된 일본의 대 한국 경제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실상 이날 발표된 다각도의 공급 안정성 확보, 기업 간 건강한 협력 모델 구축, 강력한 추진 체제 및 지원 확보 전략 외에 더 구체화된 종합 대책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만큼 이번 기회에 이들 산업의 요체라 할 수 있는 핵심 기술·기능 인력 확보가 자칫 간과되면 안 된다는 기대감이 있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에서도 해외 전문 인력의 소득세 공제 신설 등 우수한 기술 인력 유치를 강화하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지만 실상 우리나라 우수 기술·기능 인력 양성에서 핵심 제도는 바로 국가기술자격제도이다. 1974년에 시행돼 지난해까지 2900만여명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도 연간 300만여명이 자격시험에 응시하고 있다.
지난 45년 동안 시행된 이 제도는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검증된 인력을 배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단지 기술 집약형 부품, 소재, 장비가 경제 보복 수단이 되는 오늘날과 같은 현실에서 과거 중화학공업 시대에 성공리에 기능해 오던 이 제도의 변화 없이는 이들 산업 분야에서 요구되는 고숙련·고기능 인력 양성과 이로써 이들 산업의 근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그 토대부터 어렵다는 우려가 있는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가 지난 3월 '과정평가형 국가기술자격제도 확산 방안'을 통해 발표한 검정형 중심 자격제도를 과정평가형 자격으로 전환하고, 고급 기술·기능 인력 배출을 확대해 나간다는 정책이 필히 이 제도의 근본 체질 개선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시에 이것이 이번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과 관련해 우선 시행 분야를 선별해서 신속히 추진하고, 신설될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에서도 핵심 과제로 상정해 그 추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은 네 가지다. 첫째 소재, 부품, 장비 관련 종목을 과정평가형 자격으로 우선 지정, 기업에서 원하는 우수 인력이 조기에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고급 기술·기능 인력 양성을 지원하기 위해 기사 등급 이상의 과정평가형 자격을 확대하고, 융·복합 기술 분야에서 과정평가형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단편 지식이나 기술을 평가해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은 이번 같은 사태 대응에 한계가 있다. 셋째 기업이 원하는 숙련 수요를 반영해 직무능력 관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격제도 구축이 필요하다. 한 번 취득한 자격이 영원한 자격이 아니라 지속된 숙련 축적이 수반되는 자격 체계가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제 기업과 정부가 고숙련·고기능 인력 수급에 진정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경쟁력위원회 산하에 대중소기업상생협의회를 설치하겠다고 한 것을 자격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도 제 역할이 없는지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기술과 지식이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기술과 산업의 독립을 생각하면서 그 근저가 되는 기술·기능 인력을 어떻게 확보하고, 이들이 숙련 축적 과정을 성공리에 완주하게 할 것인가는 고민에 다다르기가 쉽지 않다. 이번 경제 보복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는 데 진정 이들 분야의 고숙련 기술·기능 인력 양성에 관한 한 더 이상 우려가 없는 결론을 보고 싶다. 정부의 사려와 관심이 여기까지 미치기를 바란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단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