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에서 연일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는 '국산화'다. 반도체에 쓰이는 기초재료 부문의 국산화가 시급하다는 기사가 넘쳐나고, 이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구고 있다. 국산화는 산업 안정과 발전에도 중요하지만 고용 증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과제다.
디지털 사회에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연결되고 융합되기 때문에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에서 보면 하드웨어(HW), 소프트웨어(SW), 통신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러한 요소는 최적의 효과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수용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여러 기술이 융합되면서 진화해 나가야 한다. 기본 기술 국산화는 디지털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하지만 클라우드·빅데이터의 핵심 부문을 담당하는 서버 분야에서는 소비 강국이다. 서버는 컴퓨터가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미국 기업이 메이저 위치에 있다. 지금은 화웨이, 인스퍼를 위시해 많은 중국계 기업이 놀라운 속도로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메인보드를 설계, 제조하는 기업이 시장을 노크하는 수준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서버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우리나라는 가전도 잘 만들고 메모리도 세계 정상급이다. 그럼에도 왜 서버 시장에서 중국보다 약세일까.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서버를 개발하는 것보다 서버를 유통하는 것이 수익을 쉽게 내기 때문에 서버 시장 생태계가 기술 개발을 통한 서버 제조 회사는 매우 적고 글로벌 서버를 유통하는 회사는 많은 형태로 돼 있다. 국내 서버 생태계가 글로벌 서버 유통 중심으로 가다 보니 기초 기술 연구개발(R&D)도 자연스럽게 부진할 수밖에 없어 글로벌 선도 제품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
국산 서버 기준은 직접생산 증명으로 이뤄진다. 기술 개발을 통한 생산 동력이 적다. 국산 서버 업체는 많은 있지만 서버에 들어가는 메인보드를 개발·생산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 현재 기준으로 국내에서 조립하면 국산 서버다. 국내 생산지 증명을 갖는 국내 기업이 중국 서버나 메이저서버 회사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하면 국산 서버가 된다. 이것이 현재 국산 서버 기준이다.
그러다 보니 완제품 조립 부분만 부각되고 세부 요소 기술 개발의 필요성은 희석된다. 요소 기술 개발 기업은 없는데 완제품을 조달하는 기업이 많은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국산 서버 기준이 이렇다 보니 올해부터 시행하는 중소기업 간 경쟁 제품에 글로벌 대형 서버 제조 업체가 국산 서버 브랜드를 만들어서 대응한다.
똑같은 제품으로 민간 기업에는 글로벌 브랜드, 공공 기관에는 중소기업을 경유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제품으로 판매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버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해 R&D에 지속 투자하면서 인력을 육성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서버 기술은 초연결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에지컴퓨팅, 인공지능(AI)과 맞물려 수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반드시 보유해야 할 기술이다.
국내에서 기술력 있는 회사가 많이 나오려면 국산 서버 기준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기술 개발 장려를 위해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한 메인보드나 부품 등 핵심 요소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국산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산 서버가 클라우드나 사물인터넷(IoT) 시장에 정착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해야 한다. 서버를 중기 간 경쟁 제품으로 지정했지만 정책과 현실은 괴리감이 많아 공공기관 대형 프로젝트는 아직 외산 위주로 전개된다. 국산 서버가 빠른 시간 안에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설 수 있도록 공공기관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국내 클라우드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여서 지금부터라도 국산 서버 쿼터제 같은 적극 수단을 통해 지원한다면 우리나라 서버 기업도 머지않아 중국 서버 회사와 같이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자리매김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병준 KTNF 사장 bjju@ktn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