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미국에서는 '테크커넥트 월드'라는 세계 최대의 국제 나노기술 행사가 열린다. 한국에 나노코리아가 있다면, 미국에는 테크커넥트 월드가 있는 셈이다. 나노기술과 관련된 과학, 기술 및 비즈니스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해 최신 기술과 연구 성과를 교류하고 R&D 협력, 상용화 촉진 등을 논의하는 장이다. 1998년 250명의 나노기술 연구자들이 모여 시작된 이 행사는 21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70개국, 350개 이상의 기업과 4000명 이상의 전문가가 모이는 커다란 행사가 됐다.
테크커넥트 월드의 프로그램은 크게 응용 분야에 초점을 맞춘 최신 나노기술 분야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기술 프로그램'과 정부 연구소와 기업에서 최신 혁신 기술을 발표하는 '비즈니스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뿐만 아니라 대학원생 진로 교육과 주제별 포스터 발표, 각 분야와 관련된 기업들의 전시회와 쇼케이스도 열린다.
◇지구상의 모든 나노기술을 만날 수 있는 테크커넥트 월드
기술 프로그램은 고급 재료, 고급 제조, 에너지 및 지속가능성, 전자 및 마이크로 시스템, 생명공학·의료 및 제약, 퍼스널·홈케어, 화장품, 식품 등의 6개 부문으로 구성된다. 각 부문은 다시 다양한 하위 주제 세션으로 나뉜다. 워낙 세션이 많고 다양해 하나의 공통된 주제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테크커넥트 월드'는 현재의 나노기술이 재료부터 전자 제품, 의약품, 헬스케어 등 우리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행사다. 좀 더 자세하게 최근 몇 년 간의 주요 세션들을 살펴보자.
2015년엔 '플렉서블 전자 기기 응용' 세션이 열렸다. 최근 안경, 시계와 같은 웨어러블 전자 기기, 휘어지는 스마트폰 등의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연한 전자 소자 부품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실리콘과 같은 여러 소재들을 이용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응용 분야도 늘어나는 추세다. 해당 세션에서는 플렉서블 전자 기기의 시장 예측부터 플렉서블 전자 기기가 인간과 뇌의 인터페이스 연결, 촉각 센서, 태양광 발전에까지 널리 쓰일 수 있다는 연구 성과들이 발표됐다.
2016년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유세 기간으로, 트럼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해였다. 석탄 산업과 화석 연료 자원의 개발 및 생산 확대 등이 주요 골자였다. 이를 반영하듯 에너지 및 지속가능성 부문의 세션들이 눈에 띄었다.
태양광 기술 세션에서 미국 시카고대학교 화학과 유 루핑 교수는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 중 하나인 '유기 태양전지(OPV) 개발의 진전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유기 태양전지는 유기물 용액을 0.2마이크로미터 정도의 얇은 두께의 막에 입혀 만든 전지로, 태양빛과 반응해 전기를 생산한다. 유연하고, 가볍고, 투명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상용화 된다면 핸드폰, 가방, 자동차, 건물 벽면 등 다양한 곳에 적용이 가능하다.
만약 유기 태양전지 기술이 발전된다면 미래에는 건물 전체를 거대한 태양전지로 만들 수 있다. 지속 가능한 건축물 세션에서도 나노기술 기반의 미래 건물을 실현하기 위한 연구 성과가 소개됐다. 스모그 먹는 콘크리트, 독소 냄새를 감지하는 나노센서, 스스로 청소하는 창문 등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고, 나노기술을 이용한 접착제가 발전된다면 건축 자재들이 스스로 손상을 고칠 수도 있다.
전 세계적인 물 부족 위기에 대응해 마련된 기조연설도 주목할 만하다. 테크커넥트 월드의 기술 프로그램에는 물과 나노기술 세션이 늘 포함돼 최신 물 관련 나노기술의 연구 동향을 살펴볼 수 있다. 나노기술을 통해 멤브레인이나 다공성 나노물질, 탄소 나노튜브 등이 발전하고, 이들은 수질 정화뿐만 아니라 해수 담수화에도 응용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대부분인 바닷물을 담수화해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하에, 이 세션에서는 바닷물 속 소금을 걸러내는 나노 멤브레인 연구 성과들이 소개됐다.
2017년엔 그래핀과 2D 재료의 합성 및 응용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여러 세션이 열렸다. 2D 소재는 대표적인 미래 소재 기술로 꼽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재료 과학 및 공학과 조슈아 A.로빈슨 교수가 기조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대규모 2D 소재: 그래핀과 그 너머'를 주제로 2D 소재의 연구 동향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탄소 원자들이 모여 2차원 평면을 이루는 그래핀뿐만 아니라 독특한 절연성, 초전도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종류의 2D 물질이 발견됐음을 소개하고, 자신의 연구팀이 만든 2D 질화갈륨 (2D-GaN) 합성 과정과 특성 등을 소개했다.
◇20주년 맞았던 2018년 테크커넥트 월드
2018년은 테크커넥트 월드가 20주년이 되는 해였던 만큼 더욱 다채로운 주제의 세션들이 열렸다. 3M, 에너자이저, 보잉, 록히드 마틴, 아스트라제네카 등 세계적인 기업의 연사들을 초청해 재료, 국방, 우주, 생명공학 및 제약 분야의 재료 혁신들을 소개했다. 기술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주제의 세션이 등장한 것도 흥미롭다.
우선 '혁신적인 재료로서의 은'이라는 세션이다. 은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금속이지만, 나노기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의료, 광전지, 촉매 및 전자 분야뿐만 아니라 홈 케어 분야에도 쓰인다. 이 세션에서 연구자들은 디스플레이의 투명 전극, 투명 필름 등에 쓰이는 은 나노 와이어부터 특정 질병을 빠르게 진단하는 은 나노 입자 검출 시스템, 은나노 항균 섬유 등 다양한 나노기술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는 은에 대해 발표했다.
나노 셀룰로오스를 주제로 한 세션도 등장했다. 셀룰로오스는 식물 세포벽의 주성분인데, 이 셀룰로오스를 10억분의 1m 크기로 분해한 고분자 물질을 나노 셀룰로오스라고 한다. 내열성이 강하고 기계적 성질이 뛰어나 IT기기 소재나 자동차, 의료 분야까지 사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구하기도 쉽고 친환경 소재라는 점도 강점이다. 연구자들은 나노 셀룰로오스 재료에 대한 제조 및 생산 연구부터 관련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전원, 자동차 복합 재료, 식품 포장 등 응용 부문까지 다양한 성과를 발표했다.
전기자동차가 세계적인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슈퍼 커패시터' 세션이 등장한 것도 눈에 띈다. 슈퍼 커패시터는 고성능 전기 저장 장치 또는 대용량 축전지 등으로 불리며 전기자동차의 배터리를 보완하는 장치이다. 시동과 급가속 등 순간적으로 고출력을 필요로 할 때 슈퍼 커패시터를 활용한다. 하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아 오래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세션에서도 다양한 나노 물질을 이용한 슈퍼 커패시터의 연구 사례들이 발표됐다.
한편 테크커넥트 월드에서는 지속가능한 나노기술의 발전을 목표로 매년 '나노 물질의 환경 보건 및 안전' 세션이 열린다. 나노기술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급속도록 발전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나노소재의 위험성과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세션에서는 나노물질 및 나노기술의 안전, 영향, 위험 평가, 정책 문제 등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모여 관련 내용에 대해 활발히 토론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각국의 나노기술 안전성과 관련 규제 기준들이 마련되고 있다.
이처럼 테크커넥트 월드에서는 나노기술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를 다루는 세션들과, 실제 상업화된 제품들의 전시회까지 나노기술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2019년 올해도 행사는 전 세계 최대 규모로 열렸다. 다음 글에서는 올해 열린 테크커넥트 월드 2019를 소개하며 가장 따끈따끈한 나노기술들을 살펴보겠다.
글:오혜진 과학칼럼니스트, 지원:국가나노기술정책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