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를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28일부터 시행한다. 지난달부터 계속된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의 수출 규제에 이어 일본 전략물자 전반으로 수입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는 개정안 시행을 하루 앞두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재검토' 가능성을 언급하며 협상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일본은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 종료는 별개 문제라며 수출령 개정안을 예정대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27일 이낙연 총리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회의에서 “일본 정부가 내일(28일)부터 수출무역관리령(수출령)을 시행하는데 일본 정부가 사태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으리라고 믿는다”면서 “지소미아 종료까지 3개월이 남았다. 타개책을 찾아 일본 정부가 부당 조치를 원상 회복하면 지소미아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의 발언은 3대 품목 수출 규제에 이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일본의 개정된 수출령이 오늘부터 시행되는 것을 원상 회복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총리의 발언과 관련해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내일부터 개정 수출무역관리령이 시행된다”면서 “지소미아와 일본 정부의 '수출관리 운용'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이 총리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일본은 28일부터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B그룹으로 지정한다.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등 3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 수출을 규제하는 것을 포함해 수입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에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일본 수출규제 애로현장지원단'을 적극 가동하고, 주요 소재·부품·장비에 대해선 국산화도 추진한다.
기업들도 긴장감 속에서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규제에 발목이 잡힌 반도체·디스플레이 국내 대기업은 재고 관리를 하면서 우회 경로를 통해 소재를 들여오거나 거래처를 다변화하고 있다. 일부 품목은 국산화 움직임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불화수소는 국산화의 기대감이 커졌다. 불화수소는 일본이 미사일 제조 등에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수출 허가를 까다롭게 한 품목이다.
액체 불화수소는 국내 업체 솔브레인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액체 불화수소 부족분을 공급한다. 솔브레인은 이르면 오는 9월 충남 공주시 제2공장 증설을 마치고 가동에 들어간다. 에칭가스도 국내 소재 기업 중심으로 내재화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벨기에 소재 회사와 EUV 포토레지스트를 거래하면서 부족분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삼성전자는 자사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9825' 등을 EUV 공정으로 제작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양산 공정에는 이 물질을 적용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해당 회사와 거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3개 품목 외에도 일본에서 소재나 기계를 수입하는 기업들도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반도체 장비를 수입하는데 직접적인 규제 대상은 아니지만 불안감이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도 “수출령이 바뀌더라도 문제없이 수입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민 산업정책(세종)전문 기자 kmlee@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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