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소재·부품·장비 전쟁에서 특허 전략이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주력산업 핵심 기술 자립화 과정에서 특허 전략을 수반하지 않으면 특허분쟁에 휘말려 투자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기업의 생애주기별 특허 대응 방안을 수립하고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허청, 전자신문이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한 '다시 돌아온 특허전쟁:글로벌 무역분쟁 시대, 지식재산 보호전략' 콘퍼런스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특허 관점의 기술개발 시스템 정착을 강조했다.
◇특허 관점 R&D·사업화 힘써야
이덕근 한국기술거래사회 수석부회장은 특별강연에서 일본이 우리나라 수출을 규제한 불화수소를 예로 들며 특허관점의 연구개발(R&D), 사업화 전략 수립을 주문했다.
이 부회장에 따르면 일본은 1989년 이후 30년간 연평균 180여건의 불화수소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누적 특허 출원건수는 약 40만건으로 우리나라보다 갑절 많다. 불화수소 정제, 불소계 화합물 관련 기술 또한 일본의 출원건수가 우리나라를 두 배 가량 앞선다. 출원인 국적별로도 일본인이 세계 46%를 차지한다. 한국은 8%다.
이 부회장은 “일본의 불화수소 특허 관련 기술장벽이 높다”면서 “일본은 주요 국가에서 패밀리 특허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돼 이를 회피해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는 전략도 구사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세계 불화수소 특허 가운데 우리나라 점유율은 10% 가량”이라면서 “우리가 보유한 특허 기술 기반으로 자체 R&D 투자를 확대하거나 미국 등 해외 선두기업과의 특허기술 라이선스로 일본 기술을 대체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부회장은 “특허전략과 기술개발사업의 연계활용을 위해 기술개발 특허랩컨설팅을 사전, 과정, 사후에 적용해야 한다”면서 “출연연 등 기술개발기관과 정부 기술·연구관리기관이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강력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단계별 대응 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과제기획 단계부터 변리사 등 전문가가 연구범위, 기술완성도, 수요성숙도, 경쟁환경 등 분석에 참여해야 한다. 연구수행 단계에선 기술분석, 성능실험, 내구성, 레시피, 보호범위 등에 대한 자문, 대응이 필요하다. 과제종료 단계에선 연구성과 분석, 권리보호 및 설정 자문, 청구항 설정과 PCT 출원전략 같은 권리보호자문이 연계돼야 한다.
◇특허열세 극복 방안 마련해야
정미경 윕스 전문위원은 일본의 또다른 수출 규제 품목인 포토레지스트 관련 한일 양국의 특허 경쟁력을 분석했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한국에 등록된 일본의 관련 특허는 4028건으로 점유율이 61%에 이른다. 반면 일본 내 한국출원 등록은 468건에 불과하다.
정 전문위원은 “소재 자립화 과정에서 특허회피, 분쟁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응에 상당 기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특허 열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대체수입원 발굴, 인수합병(M&A), 우수 기술 특허권자 영입 등으로 대응방안을 다변화하며 격차를 좁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조강연자로 나선 방규용 탑엔지니어링 상무는 자사 특허분쟁 대응 사례를 소개하며 중소중견 기업의 특허전략 수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방 상무는 “2002년 디스펜서 장비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일본 기업으로부터 수차례 특허 침해 경고장을 받았다”면서 “당시 회사는 특허 전담 조직이나 전략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영업이 위축되고 결국 일부 해외 사업을 포기했다. “당시 특허분쟁이 초기 회사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면서 특허 중요성을 전했다.
방 상무는 “이후 특허전담 조직, 전략 수립 투자 등을 강화하면서 조직 문화를 바꿔 나갔다”면서 “2010년 글래스 커팅 시스템 국산화 때 일본 기업의 특허 침해 경고를 받았지만 사전에 수립한 시나리오에 따라 대응해 분쟁을 무마했다”고 소개했다.
방 상무는 “미리 분쟁 가능성을 예측한 결과에 따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서 “경험상 특허 대응 문화가 정착하는데 10년 이상이 걸렸기 때문에 상당 기간 꾸준한 투자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행사를 공동주최한 특허청의 목성호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우리 기업의 지재권 분쟁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해외 사례로 확인되고 있다”면서 “권리 보호를 위해 기업의 분쟁 대응 역량 강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최호 정책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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