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의 소재기술 자립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할 시기입니다. 일본 소재수출 규제를 앞세운 무역보복으로 인해 우리나라 산업, 경제에 많은 어려움을 닥치고 있습니다. '클러스터형 R&D실증단지' 조성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정환 재료연구소장은 요즘 국내에서 가장 바쁜 인물 가운데 한명이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시작한 후 소재 전문 정부출연연구소 기관장으로서 대응전략 마련하랴 여기저기 다니며 그동안 마련한 전략을 소개하랴 정신이 없다. 그에게서 소재 기술 자립과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들어 보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창원에서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오가며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고 들었다.
▲일본 수출규제 사태로 인해 참석해 달라는 자리,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는 기관이 많아졌다. 청와대, 국회, 과기정통부와 산업부, 중기벤처부 등 기관과 각종 토론회, 세미나 등 행사장을 다니며 우리나라 소재산업 현황과 경쟁력, R&D 상황 등을 보고하고, 필요한 지침도 받고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떤가.
▲이번처럼 산·학·연·관이 모두 뭉쳐 소재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이 정도 열의에 목표 의식, 협력 분위기라면 뭐든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다.
-현재 큰 틀에서 정부 방침은 무엇인가.
▲소재기술 자립과 안정적인 소재산업 생태계 구축이다. 과기정통부는 중장기 소재부품 R&D를 추진해 소재산업 경쟁력 기반을 닦고, 산업부는 기업 소재수급과 생산을 지원해 제품 및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핵심 소재와 부품 중장기 R&D 방안 마련과 소재산업 경쟁력 강화 사업을 양 축으로 추진한다.
-재료연이 해야 할 역할은.
▲일본 수출 규제에 단기 대응할 수 있는 핵심 소재 국산화 요구가 거세다. 규제 리스트에 오른 소재·부품 국산화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 소재기술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있다. 기업 경쟁력은 결국 독자 기술이나 제품에서 나오기 때문에 중소기업 독자 기술 및 제품 개발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소재기술 관련 R&D는 기존에 해온 역할의 연장선에서 시급한 국산화 과제와 중장기 역량확보 과제로 나눠 추진할 계획이다.
-중소기업 소재기술 경쟁력 강화 방안은 어떤 것이 있나.
▲자체 역량으로 R&D를 추진하기 어려운 기업은 그동안 대학, 연구기관 등에서 기술을 이전받는 방법으로 독자 기술 및 제품을 확보하고 있다. 문제는 연구실 수준의 기술과 기업에 필요한 즉시 상용화 가능한 기술 간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기업이 느끼는 기술 도입 현실이고 한계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에 대규모 클러스터형 소재부품 실증화 단지 조성과 운영을 제안했다.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이 모여 공동으로 R&D를 추진하고, 현장과 똑같은 환경에서 개발 기술을 실증까지 진행하는 단지다.
-실증 단지도 구축하고 정착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나.
▲우선 재료연을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과 대학이 개발기술을 성숙화해 기업에 제공해야 한다. 재료연부터 기업과 협력해 진행하는 공동기술 R&D를 확대하겠다. 실증 단지는 이러한 산학연 실질 협력이 확산돼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필요한 인프라다. 대기업이 참여하면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재료연 원 승격과 독립화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수년 전부터 추진했는데 아리러니하게 일본 수출 규제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아졌다. 소재 전문연구기관을 넘어 소재 원천기술 확보와 소재기술 자립화를 위한 산업 전반을 조율하는 소재부품 R&D컨트롤타워 역할이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내달 법안 소위와 연말 본회의를 통과하면 원 승격이 이뤄지고 독립 출연연으로 출범할 수 있을 것이다.
창원=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