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하이트진로vs롯데주류 '진로이즈백' 공병 200만병 '낫 백'

[이슈분석]하이트진로vs롯데주류 '진로이즈백' 공병 200만병 '낫 백'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인기몰이 중인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진로)' 공병 반환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롯데주류가 주류회사 간 맺은 공용병 사용 자율협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확보한 진로의 공병을 돌려주지 않고 있어서다. 하이트진로는 '진로이즈백' 역시 재활용이 가능한 병으로 문제될 것 없고 회사의 사유 재산이라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주류는 10여년 전 업체간 맺은 협약을 훼손하고 환경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만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롯데주류 공장에 쌓여있는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 병. 사진=설훈 의원실
롯데주류 공장에 쌓여있는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 병. 사진=설훈 의원실

하이트진로는 지난 4월 40여년만에 진로를 재출시했다. 진로이즈백은 출시 72일만인 7월 6일 1100만병 이상 판매고를 돌파하며 연간 목표치를 일찌감치 달성했다. 최근에는 물량 부족 현상까지 발생했다. 편의점 등 주요 판매처에서는 진로 발주가 제한되기까지 했다. 식당 등 유흥음식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 광화문, 강남 등 주요 상권에서는 제품 공급이 이뤄지고 있으나 외곽 지역에서는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마저도 재고 부족으로 인해 발주 물량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류업계에서는 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경우 이른바 '신제품 효과'로 초반 발주량이 급속히 증가한 이후 판매 여부에 따라 발주량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 관례다. 하지만 진로의 판매량은 출시 첫 주 대비 6월 4배, 7월 8배 이상 판매량이 증가하는 등 가속도가 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인기에 진로는 1000만병 판매 돌파는 물론 최근에는 약 2000만병 가량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전체 판매량의 약 10%에 달하는 200만병의 공병이 회수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통상 소주 공병 재사용 횟수가 7~8회에 달한다. 하이트진로는 공병이 제때 돌아오지 않아 부담이다.

진로이즈백
진로이즈백

업계와 진로이즈백 병을 개발해 단독으로 납품하는 패키징 회사 테크팩솔루션 등에 따르면 출시를 앞두고 370만병을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진로의 인기가 높아지자 생산량을 늘려 추가 물량 생산에 나섰고 상반기에만 1100만병을 납품했다. 소주 출고가에서 새 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하이트진로의 원가 비중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회수되지 못한 200만병의 진로 공병은 경쟁사인 롯데주류 공장 부지에 쌓여 있다. 소주 공병의 경우 소매점을 통해 수거된 뒤 주류 도매상을 통해 생산업체로 전달된다. 진로 병의 경우 소주병으로 분류돼 각 주류 업체로 전달된다. 타사의 경우 이를 재분류해 하이트진로에 반환하고 있지만 롯데주류가 이를 거부하고 있어 문제가 불거졌다.

소주 업체들은 2009년 소주병 공용화에 동의, 각기 다른 디자인의 녹색병을 동일한 크기와 디자인으로 맞춰 제조사에 상관없이 공용으로 소주병을 이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재사용률을 높이고 빈 병 수거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자는 취지다.

롯데주류가 진로 공병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롯데주류는 공병 재사용 협약이 깨지는 것은 물론 산업 인프라가 흔들릴 우려가 있는 만큼 이형병 사용은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로이즈백과 청하 병이 분류되고 있는 모습.
진로이즈백과 청하 병이 분류되고 있는 모습.

하지만 자율협약인 만큼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이나 강제성은 없다. 한라산소주, 무학, 대선주조 등 타 소주업체가 추가 생산비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이형병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형병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천편일률적인 초록색 병에서 벗어나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소비자 취향을 공략하기 위해 추가 생산비용을 기꺼이 지출하고 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롯데주류의 공병 반환 거부 움직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업체 스스로 규제가 아닌 협약에 얽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소주 시장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경향을 감안할 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각 사들의 노력과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힘을 얻는다.

한 지방 소주업체 관계자는 “기존 획일화된 제품만으로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찾기 어려워 회사만의 특색있는 브랜드를 개발하기 위해 이형병 사용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다양화된 시장 요구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신제품을 선보이기 위한 노력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롯데주류가 환경을 위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진로 병 역시 재사용이 가능한만큼 환경 문제가 아닌 경쟁사를 흠집내기 위한 의도가 더 큰 것으로 읽힌다”고 덧붙였다.

하이트진로가 청하병 반납을 위해 피박스에 수거한 모습.
하이트진로가 청하병 반납을 위해 피박스에 수거한 모습.

이를 관할하는 환경부 입장도 난처하다. 자율협약인 만큼 이를 강제화할 규정이 없고 관할 부처에서 협약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 내리기도 애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이달 초 문제 해결을 위해 산하기관인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와 함께 전국 소주 제조사 및 음료업체를 대상으로 이형병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한 전체회의를 개최했고 이후 업계간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해법은 못내놓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표준용기 사용을 강제화할 규정이 없고 기업 자율성과 소비자 선택권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라며 “업계간 합의를 통해 결론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합리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중재에도 롯데주류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달 18일 가진 진로 병 수거에 대한 비용 산출을 위한 양사 실무진 만남에서도 공용병 사용 자율협약 이행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형병 시용중단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롯데주류는 자율협약의 법제화를 통한 강제성을 부여해달라고 강경책을 썼다.

문제를 공론화 할 당시 “환경부 입장을 따를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앞서 롯데주류는 “환경부가 가이드라인을 정해 줄 경우 따를 것이고 진로 병 역시 반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롯데주류의 법제화 요청에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동의하지만 모든 것을 100% 강제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사용자 측이 추가비용을 부담하는 방안 등 양측을 만족시킬 수 있고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합의점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이주현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