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CE차이나'를 방문했다.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중국 기업들이 선보인 신제품·신기술이 아니라 전시장 한편에서 열린 부대행사였다. 광저우·선전 소재 업체들이 모여 바이어를 만나는 네트워킹 자리였다.
현장에는 각 업체 관계자들이 작은 테이블에 자사 제품을 늘어놓고 있었다. 어찌보면 별 볼 일 없는 현장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 휴대용 안마기 등 각종 소형 디바이스들이 있었다.
눈을 사로잡은 것은 참가 기업 규모였다. 현장에만 무려 250여개사가 참가했다. 어지간한 행사의 참가업체 수를 훌쩍 넘어섰다. 꽤 넓은 행사장이 관계자들로 가득했다. 이들 역시 수많은 현지 소규모 업체의 일부일 뿐이었다. 중국의 발전된 기술력보다 '규모의 힘'이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중국에서는 거대한 영토, 압도적 인구만큼이나 수많은 업체가 명멸하고 있다. 대다수는 문을 닫거나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지 못한다. 그러나 다양한 업체가 도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템, 새로운 시장이 개척된다. 수많은 업체는 중국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경쟁력도 높인다.
이제 중국은 차세대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려 한다. 5세대(5G) 이동통신, 자율주행, 전기차와 같은 신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실제 이들이 구현한 기술 수준도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산업 역량을 '싸구려' '짝퉁'으로 치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 국내 산업계에 직접 위협이 되고 있다.
우리 산업계도 힘을 모을 때다. 규모의 경제로 중국을 이긴다는 생각은 무모하다. 몸집에서 안 되면 소수정예로 갈 수밖에 없다. 기술 초격차를 바탕으로 빠르게 신기술을 확보하고, 기술 표준과 세계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최선이다.
현재 우리 산업계는 내분에 빠졌다. 전자업계 원투펀치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전면전에 나섰다. 배터리업계에서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세게 붙었다. 기업 분쟁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땐 싸워야 한다. 저마다의 셈법이 있다. 그러나 진짜 리스크는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 국내 대표 기업들의 갈등이 자칫 산업계 전체 경쟁력을 둔화시키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