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스타트업 생태계 중심에는 시민이 있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공용 전동킥보드를 넘어뜨려 놓기 바쁘다. 바람에 쓰러져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전동킥보드가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은 유럽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최근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운영하는 로케 원정대에 선정돼 영국, 프랑스, 스페인을 돌아본 문헌규 에어블랙 대표는 전동킥보드를 포함한 공유경제가 빠르게 자리 잡은 유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역 시민들이 조직한 마을 공동체가 변화를 이끌었다. 공동체는 수시로 모여 사회 문제 해결 방법을 논의한다. 대안으로 정보기술(IT)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관련 스타트업과 협업, 개선책을 찾는다. 공유경제도 이 과정을 거쳐 뿌리내렸다. 스타트업은 사회 혁신가로 인정받는다. 반면에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의 시민 역할은 미미하다. 스타트업이 항상 먼저 시장을 혁신하겠다고 외친다. 시민은 뒤쫓아 가는 것 외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
시민사회와 소통, 공감 부족은 스타트업을 고립시킨다. 지난해부터 모빌리티 스타트업과 택시 간 갈등이 불거졌지만 대중은 누구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새 서비스가 편리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아군으로 적극 나서는 지지자는 드물었다. '스타트업이 잘돼 봐야 대표만 좋은 것 아니냐'는 인식마저 확산하고 있다. 반기업 정서가 스타트업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스타트업은 빠른 성장만 강요받는다. 정부는 우수 스타트업을 평가할 때 고용 창출, 특허 유무, 매출 실적 등 당장 눈에 보이는 지표를 잣대로 삼는다. 사회 문제 해결에 따른 파생 효과는 후순위로 밀린다. 사회 분위기도 비슷하다. 국내에서 에어비엔비는 성공한 유니콘 기업으로 꼽힌다. 경제 성과가 집중 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에어비엔비가 실리콘밸리의 비싼 물가 탓에 집을 구하지 못하는 개발자 문제를 해결했다는 데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스타트업 정책 패러다임을 고민해 볼 시기다. 과거 전통 기업을 육성하던 방식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설계해선 안 된다. 시민 참여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 문제 해결이라는 과제를 지역 사회와 스타트업이 머리를 맞대고 풀 수 있는 환경이 시급히 조성돼야 한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