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슈퍼커패시터에 적용해 1100볼트(V) 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세계 처음으로 구현했다. 에너지밀도·수명·안전성 측면에서 기존 ESS와 비교해 한층 진화한 기술이다. 또 세계 최대 직류(DC) 배전망 현장 실증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재생에너지 잉여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로 전환·저장하는 파워 투 가스(P2G) 핵심기술 연구개발(R&D)에도 본격 착수했다.
◇그래핀이 ESS로 재탄생
21일 한전 전력연구원에 따르면 '1100V 그래핀 슈퍼커패시터 ESS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그래핀은 탄소원자들이 벌집모양으로 연결돼 있는 단층 구조 재료로 2004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이 흑연에서 떼어낸 후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활성탄에 비해 비표전적이 넓고 전기전도와 기계적 강도 등이 우수하다. 슈퍼커패시터는 활성탄 전극을 사용해 고출력·고속충방전이 가능한 축전지 한 종류인데 전력계통에서 에너지 저장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에너지밀도가 기존 한계였다.
연구원은 1차적으로 활성탄 대신 그래핀을 접목한 4000패럿(F) 원통형 슈퍼커패시터를 개발했다. 기존 활성탄을 사용할 때보다 출력 밀도는 1500w/kg 이상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밀도가 5배 이상 높아지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활용해 2차로 '60볼트 220F 모듈'을 개발, 20개 모듈을 직렬로 연결해 '1100V 그래핀 슈퍼커패시터 ESS 시제품'을 완성했다. 주파수조정용(FR)·재생에너지 연계용 이외에 고출력 성능을 요구하는 전기차·전자제품·스마트빌딩·홈IoT 등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연구원 설명이다.
안전성이 돋보인다. 연구원은 국제 공인인증 시험기관으로부터 내부단락·충격·과충전 등 다섯 가지 안전성 테스트를 통과했다. 내년에는 주파수조정용 1㎿ ESS 실증을 거쳐 2년 후 상용화 제품으로 완성시킨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기술 이전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박병준 첨단신소재그룹 선임연구원은 “그래핀 슈퍼커패시터 ESS 시제품은 고출력·고속충방전을 비롯해 수명을 크게 늘리는 특성을 갖고 있다”며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는 5000~6000회 충방전이 가능하지만 이번에 개발한 제품은 20만회 이상 충·방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활성탄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애당초 그래핀 슈퍼커패시터 ESS는 소재부터 국산화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면서 “시제품을 외부에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DC 아일랜드·수소 저장 및 운반 R&D도 '눈길'
한전 전력연구원은 전남 진도군 서거차도를 '직류 아일랜드(DC island)'로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사업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직류 배전망 실증사업으로 서거차도 내 교류 대신 1500v 직류 전기 선로를 구축했다. 또 태양광·풍력·ESS·디젤발전기 등 직류발전기를 연계해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는 과제도 수행했다. LED 가로등, 전기 카트 및 충전소 설치는 주민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 역할을 했다.
연구원은 대규모 실증실험에 이어 직류 배전망 표준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적정 전압·안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직류배전망 실증실험과 더불어 표준화 제정이 필수로 손꼽힌다. 미국·일본 등 세계 각국 기업들도 직류 배전망에 대한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지만 대부분 실증사업 수준에 머물고 있다. 표준화 선점은 세계 직류 배전망 시장에 선점에도 긍정 효과가 분명할 것이라는 게 연구원 판단이다.
조진태 스마트배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표준화가 완료되면 직류 배전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유럽·인도·중국·아프리카 등을 대상으로 한 국내 기업의 해외사업 수주 및 기술이전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연구원은 재생에너지 간헐성으로 인해 활용하지 못하는 잉여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한 후 수소·메탄 등과 같은 가스연료로 전환하는 P2G 기술을 적용, 그린수소 생산 핵심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R&D 과제는 △수소생산(하이브리드 수전해) △이산화탄소 메탄화 기술 △통합 수소에너지시스템 설계 및 실증 등으로 구분된다.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증대에 따른 전력 그리드 불안전성 및 병목현상을 해결하고 대용량 에너지저장 시스템 개발 필요성을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