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 전화위복(轉禍爲福)은 있어도 복이 화가 된다는 전복위화(轉福爲禍)는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핵무기와 원자력 뒤안길에서 히로시마와 후쿠시마를 돌아보며 전복위화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 넓은 섬 히로시마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복된 섬 후쿠시마는 상용원전의 재앙이 되고 말았다. 사고 때 곧바로 콘크리트로 원자로 건물바닥을 메워두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텐데 매우 안타깝다.
◇정화를 거친 오염수라도 위험 가능성 있어
외교부가 일본 경제공사를 불러 우려를 전달했지만 일본 정부는 종합적 검토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조처를 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아직도 뜨끈뜨끈한 핵연료 산더미에 부어넣은 냉각수가 증발하고, 가라앉은 오염수는 지하수와 섞여서 일부는 저장조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앞바다로 흘러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고 직후 하루 1000t이라던 지하수는 요즘 들어 150t으로 줄었다니 이 또한 믿기 어렵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여태까지 100만t 넘게 쌓였고, 내년이면 140만t으로 저장용량을 늘린다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끊임없이 불어나는 오염수를 더는 가둬둘 수 없다면 어떻게든 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게 도쿄전력의 방침인 듯하다. 지하 주입, 대기 방출, 지하 매설 등이 거론된다지만 이 모두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도쿄전력이 해양 방류를 추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방법이 가장 저렴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는 정화과정을 거쳐 오염수에 있는 삼중수소만 빼고 나머지 방사성 물질은 다 걸러내고 있다고 한다. 이는 방사능 오염수 안에 있는 세슘과 스트론튬 등을 제거하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주 가동이 중단되는 다핵종제거설비로는 방사성 물질을 제대로 걸러내기는커녕 동위원소로서 화학적 특성이 물과 똑같은 삼중수소는 애당초 빼낼 수가 없다. 게다가 삼중수소는 바다에 버려도 괜찮을 것일까?
오염수 140만t이면 올림픽 수영장 700개 분량이다. 내년 도쿄 올림픽에 앞서 혹여 방류하게 되면 여기 들어있는 삼중수소는 어림짐작으로도 히로시마급 핵폭탄 700개가 수중에서 폭발할 때 나오는 것보다 많다. 이는 앞바다는 물론 먼 바다까지 오염시킬 것이 자명하다. 느긋하게 앉아서 넓고 열린 바다가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무사안일한 발상은 우리나라를 필두로 한 국제사회가 결코 용인할 수도 감내할 수도 없다. 1946년 수중 핵실험으로 초토화되어 주민들이 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비키니섬의 교훈을 일본은 되새겨야 한다.
◇삼중수소는 안전한 물질이 아니다
삼중수소는 자연에도 조금 있지만, 원전에서 나온 고농도의 경우 발암이나 기형 등을 유발하는 방사성 물질로 몸 안에 들어오면 발병 확률이 높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27년이나 걸리며 체내에 들어오면 1~2주 만에 절반이 빠져나갈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 사이에 우리 몸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
후쿠시마 오염수를 그대로 흘려보내면 해양수를 오염시킬 뿐 아니라 어패류 등에 농축돼 바다 건너 우리 밥상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동중국해까지 대한 해협과 쓰가루 해협을 따라 남해로 동해로 흘러들 수 있다. 게다가 삼중수소는 헬륨으로 바뀌는데 이러한 핵변환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아무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에선 적은 양의 삼중수소라도 몸 안에 들어오면 세포가 죽어가고, 유전자가 망가지며, 생식기능이 떨어지는 등 위해도가 올라간다고 보고 있다. 많은 양이라면 더욱 위험해 1953년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고농도 삼중수소 피폭으로 2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참고로 국내 평균 연간허용 인공 방사선량은 1mSv(마이크로시버트)지만 100mSv까지 받아도 건강한 성인이라면 그리 걱정할 수준이 아닐 수도 있다. 숫자로만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는 더욱 취약할지도 모른다. 이런 것을 다 떠나서 한 사람의 희생자라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핵연료가 녹아 3000도 넘어갈 때 나온 200종이 넘는 방사성 물질 중 요오드, 세슘, 스트론튬과 함께 삼중수소는 우리 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물 분자를 끊어버리고, 유전자 이중나선 구조를 뒤틀어 추후에 종양이나 기형으로 번져나갈 수도 있다. 게다가 방사선도 내지만 독극물이기도 한 플루토늄이 계속해서 지하수와 냉각수에 섞여 봇물 터지듯 흘러가는데 일본 정부가 방사성 물질 대부분을 제거했다고 주장한다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태풍 하기비스 폭우에 후쿠시마 오염토가 하릴없이 떠내려가는 걸 보면서 일본 정부의 무책임과 도쿄전력의 무능력이 만천하에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원전에서 나온 모자, 장갑, 신발이라도 단단한 드럼통에 집어넣고 땅속 깊이 묻어두는 경주 처분장을 보고 일본은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제1원전 부지가 꽉 차면 제2원전 부지와 반경 30km 주변을 주거 제한구역으로 지정하고, 국유화해 짧게는 300년 길게는 3만 년까지 방사성 폐기물을 철통같이 보관해야 할 것이다.
글: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서균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