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가장 많이 주는 나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기차 충전기와 설치·공사비 전부를 지원하는 나라, 전기차 충전요금의 60% 이상을 깎아 주는 나라, 전기차를 구입하면 400만원 상당의 각종 세금을 감면·할인해 주고,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용주차장 이용료 50%를 지원해 주는 나라.
모두 우리나라 얘기다. 다른 나라에선 찾아 볼 수 없는 파격의 혜택이다. 2013년 제주를 시작으로 한 국가 전기차 정책은 물질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그렇다면 전기차 보급 성과가 좋았을까.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 2013년에 민간 보급이 시작된 이후 매년 정부가 목표한 보급량을 달성한 건 2017년이 유일하다. 11월을 앞둔 올해 역시 정부 목표치 4만여대 가운데 보급률은 60% 수준이다.
돈을 쓴 만큼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전기차 보급은 여전히 저조하다. 지난해까지 국내 전기차 누적 보급수는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보다도 뒤처진 세계 8위를 차지했다. 이들 국가의 전기차 보조금은 우리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충전 전기요금은 우리보다 최소 3배 이상 비싼 데도 전기차는 더 많이 보급됐다.
전기차와 함께 성장해야 하는 전기차 충전서비스 시장도 정부 정책 탓에 변질됐다. 국내엔 충전사업자가 10여개 있지만 충전서비스로 수익을 낸 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충전기를 설치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수백·수천만원의 보조금으로 마진을 남기는 게 유일한 수익 모델이다.
빵집이 빵을 팔아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정부가 지원하는 임대료와 밀가루 등 각종 재료비로 상점을 유지하는 격이다. 임대료·재료비 일체를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정부가 지원하다 보니 손님이 찾지 않는 빵집만 엄청나게 늘었다. 국내에 설치된 공용충전기 가운데 절반 이상 사용이 거의 없다. 전기차 이용자의 접근성과 상관없이 충전기만 설치하면 정부가 돈을 주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충전기가 깔린다.
최근 한국전력공사가 정부 방침에 따라 지난 3년 동안 운영해 온 '전기차 특례요금제'를 예정대로 해지하기로 했다. 특례요금제는 충전사업자나 소비자가 매달 내는 기본요금 면제와 충전 사용량에 따른 전기요금 50%를 할인해 주는 제도다. 이 제도가 없어지면 충전기용 기본요금은 부활하고 충전요금은 일반 전기요금 수준이 된다. 원래 전기요금대로 정상화되는 당연한 구조다. 이 요금제를 해지하면 충전사업자가 기본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충전기의 무분별한 설치를 막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산업통상자원부가 '특례요금제' 연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방문, 전기차 보급 확대를 강조한 '미래차 국가비전'을 선포했다는 이유로 청와대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돈만 주는 정책은 가장 쉬운 정책이다. 보조금 지원이 당초 계획과 달리 연장을 반복한다면 그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다. 미국, 유럽, 중국 등은 이미 보조금 제도를 폐지하고 물질 지원과는 전혀 반대인 시장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내연기관차 생산을 규제하고, 자동차 회사가 판매하는 일정 물량을 전기차로 판매해야 하는 규제다.
우리도 이제는 바꿔야 한다. 보조금은 시장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지만 시장 연속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돈 정책은 줄이고 소비자와 자동차·충전서비스 업체가 변화와 성장을 주도하는 시장 동기 부여 정책을 고민할 때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