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국민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법률 안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줍시다.” 국회의원 명찰을 단 학생이 큰소리로 말했다. 이어 대학생 역할을 맡은 학생이 “저는 국민의 의무를 다해왔습니다.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입니다.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지난 25일 서울 창덕여중 강당에 12명의 학생이 모여 앉아 올해 초 미국 그랜드 캐니언에서 일어난 국내 대학생 추락사고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였다. 국회의원, 대학생, 외교부, 변호사, 여행사, LA총영사, 악플러 등 총 12가지 역할에 맞춰 주장을 펼쳤다.
팀별 논쟁 전 학생들은 동일 역할(국회의원, 대학생, 변호사팀)별로 모여 어떤 전략으로 상대방을 설득할지 논의했다.
교사는 보조역할에 그쳤다. 팀별로 교사 한명이 배정됐지만 학생 주장을 듣기만 했다. 팀별로 발표자 주장을 정리하는 학생이 오히려 교사 역할에 가까웠다. 화이트보드에 역할 별로 의견을 정리하는 학생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추가 질문을 했다.
팀별로 논쟁이 끝나면 손을 들어 가장 설득력 있는 의견에 대해 투표한다. 이를 기반으로 팀별 최종의견을 발표한다. '부상당한 학생의 국내 이송 비용만 지원하자' '국가 지원금이 많으니 모든 비용을 지원하자' 등 팀별로 낸 최종 결론은 달랐다. 발표가 끝나자 '저 의견은 논리적이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란 말이 강당 곳곳에서 나왔다. 교사가 개입하지 않아도 논의는 매끄럽게 진행됐다.
창덕여중 3학년생이 2주에 한번씩 진행하는 '짝토론의 이해와 실제' 수업 모습이다. 창덕여중은 수업과 사회 이슈를 분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랜드 캐니언 대학생 추락사고' 등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뉴스를 기반으로 토론한다.
우선 학생은 뉴스를 탐구하며 '민주시민'이라는 큰 주제를 중심으로 토론한다. 수업을 통해 학생은 질문하고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교사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서로 논의하는 자율적인 수업이다. 학생 모두에게 태블릿PC가 제공되기 때문에 논의 중 모르는 것은 바로 검색을 통해 알 수 있다.
유호정 학생은 “보통 학교에서 삶과 수업 내용이 분리된 경우가 많지만 우리 학교는 그 칸막이를 부수고 있다”며 “사회, 삶을 중심에 둔 사회 수업이어서 학생이 주도적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본인 의견을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창덕여중은 빠르게 변하는 정보기술(IT) 트렌드에 맞춘 수업도 한다. 2학년 학생은 2주에 한번 3D프린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프리젠테이션, 동영상 분석을 배운다. 이날 학생들은 각자 디자인한 이름표를 3D프린터로 출력하고 있었다.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각자 다른 디자인의 이름표를 모델링했다.
이종제 교사는 “스케치업 프로그램, 3D 프린터에 관심 많은 학생은 교사가 가르쳐주기도 전에 친구들을 먼저 도와준다”며 “학생들이 서로 자유롭게 물어보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IT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창덕여중은 2015년부터 서울시 유일의 미래학교 연구학교로 지정됐다. '삶을 중심에 둔 융합교육'을 목표로 다양한 미래형 교육과정을 편성했으며 공간 혁신도 시도하고 있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