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꺼냈다. 임기 중 중도하차 이유가 무엇인지, 항간에 자자한 내년 총선 출마설이 맞는 지 물었다.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좀 쉬고 싶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사의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바로, 실행에 옮겼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시중의 추측처럼 내년 총선 출마를 작심했으면 진작에 물러났어야 했다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랐다.
향후 거취에 대해 고 위원은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의미있는 일을 하려면 청와대 혹은 정부, 국회, 공공기관으로 이동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고 위원은 17년을 정당과 청와대, 행정부에서 정무직 공무원으로 살았다며, 할 만큼 했다고 응수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초연함도 엿보였다.
향후 거취에 대한 질문을 '우문'으로 판단했는지, 고 위원은 '현답'으로 맞받았다. '5G 초연결사회-완전히 새로운 미래가 온다'라는 제목의 서적을 출간했다고 말했다. 공직 생활을 의미있게마무리하기 위한 나름의 역작이라고 소개했다.
고 위원은 물러나지만 정무직 공무원이라는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며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여운을 남겼다.
자신의 능력과 인생은 공공재나 다름 없다고 했다. 민간 영리활동을 위한 기업에는 60세까지 절대 갈 생각이 없다고 단언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공부하며 쓰임을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대담=김원배 통신방송부장
-5년 5개월간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재직했지만 임기가 남았다. 임기가 보장된 자리를 내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방통위 상임위원에 지명된 건 정부와 집권 여당에서 활동하며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국회와 청와대, 정부에서 근무하며 정치는 물론이고, 관료 속성과 행정 메커니즘도 알게 됐다. 이런 점을 고려해 문재인 정부 초기 국정운영 조기 안정화를 위해 대통령이 임명했다고 생각한다.
2017년 6월 연임이 결정될 당시에는 대통령이 임명한 정무직은 임기와 무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는 10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현 정부 미디어정책 설계자로서 정부 기본 생각을 실현하는 게 소임이다. 때로는 악역을 맡으며 이전에 쌓여 왔던 여러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제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나.
▲처음부터 3년을 다 채우는 게 아니라 미션(임무) 중심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3년을 채우겠다는 생각보다는 인사권자가 주는 역할과 해야할 일에 집중했다. 11월 9일은 정확히 문재인 정부 반환점이다. 저는 초기 안정화까지 역할을 했고, 어느 정도 미션을 완수한 중간 이후에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갖고 있었다.
심사숙고했기에 후회는 없다. 다만, 마음이 조금 무거운 건 사실이다.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혁신성장을 힘있게 추진해야 한다. 방통위를 둘러싸고 여야와 진보·보수 대립이 격화된 상황에서 혼자 빠져나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직에 대한 미안함이 있는 게 사실이다.
-세인의 진짜 관심은 거취 문제다. 출마인가, 청와대행인가.
▲제가 특출난 게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30대 후반에 참여정부 청와대 근무, DJ 정부땐 민주당에 있었으면서 방송정책을 총괄해 봤다. 사람이 이정도 나이가 되면, 기존에 있던 자리에서 해야할 역할이 있다는 것과, 역할이 정리되고 또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제가 국회나 청와대는 물론이고, 대학, 공공기관에 갈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역할이 주어진다면 갈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퇴임에 맞춰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고민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가장 먼저하고 싶었던 일은 방송통신 정책전문가로 활동한 경험과 지식을 책으로 남겨야겠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5G 초연결사회-완전히 새로운 미래가 온다'는 제목의 책도 출간하게 됐다.
-방통위는 대표적인 규제기관 아닌가. 5G와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을 가진게 흥미롭다. 견해는 무엇인가.
▲사실 공직 생활을 의미있게 정리할 방법이 무엇인지 올해 초부터 고민했다. 마침 4월에 5G가 상용화됐다. 2016년에 클라우스 슈밥이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논의를 부각시킨지 3년째 되는 시점이었는데, 4차 산업혁명은 5G 상용화로 구체화됐다고 봤다.
이제 모든 산업의 중심이 5G 중심으로 옮겨가겠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신문과 통신사 자료,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자료를 닥치는대로 모았다.
연구를 하다보니 내 관점과 견해를 정리하고 싶었다. 기업이 혁신 관점에서 밝은 면을 본다면, 정부는 전체 업계와 사회와 나라를 봐야 한다. 혁신의 양지 반대에는 음지가 있기 마련이다.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 첨단기술의 안정성, 법적·윤리적 문제, 인공지능(AI) 로봇, 플랫폼 경제 등장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문제 등을 살폈다. 5G 초연결사회와 디지털 대전환의 관점에서 트렌드 변화를 봤다. 초연결 사회의 그림자를 5대 문제로 정리하고, 5대 국가 전략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 혁신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라면, 타다 문제와 같은 사회적 갈등 아니겠는가. 해법이 있나.
▲타다를 비롯한 공유경제, 모빌리티, 공유숙박과 같은 신기술에 대해 원칙을 정해야 한다. 단건으로 보고 대응해선 안된다. 정부와 국회 차원에선 새롭게 등장하는 혁신에 대한 스탠스를 정해야 한다.
어떻하면 혁신에 대한 수용도를 높일 것인가가 문제다. 사회적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 등에서 조금 양보해도 사회제도와 정부에서 보호를 받는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혁신을 통한 성장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성장없는 분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념과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동시에 사회적 갈등을 포용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체계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혁신성장을 달성하면서도 이해관계 충돌을 해소하도록 합리적 절차가 필요하다.
-재임기간 망 이용대가 역차별 해소를 주장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망 이용대가 문제 역시 개별기업의 문제로만 봐선 안된다. 인터넷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국내 통신사의 힘이 역전됐다. 2000년대 초반만하더라도 수만개 인터넷기업이 벤처라는 이름으로 통신생태계에 편입됐다. 당시에는 CP에 대해서는 규제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시장이 성장하면서 힘의 관계가 역전됐다. 글로벌 수퍼스타기업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텐센트, 바이두,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기업으로 재편됐고, 20년전 정책패러다임을 재편해야할 시기가 왔다. 거대 글로벌CP가 망이용대가, 조세, 가짜뉴스 문제 등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므로, 글로벌 차원에서 새로운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신사와 CP가 난상토론을 거쳐 연내 망 이용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 이번에 글로벌CP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변화하는 패러다임을 고려한 사회적 논의와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미디어 전문가로서 유료방송 인수합병(M&A) 등 시장 재편에 대한 견해는.
▲이미 글로벌 미디어시장 트렌드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 2000년부터 방송통신융합은 사업자간 M&A와 시장 융합으로 본격화됐다. 막는다고 막아지는 흐름이 아니다. 산업활성화와 이용자보호와 공정경쟁, 유료방송 지역성 구현 등 공익적 가치는 투트랙으로 가면 된다.
방통위가 규제기관이라 하더라도 트렌드를 인정하고 M&A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건 방향성과 속도감이다. 글로벌 트렌드가 규모의 경제를 지향한다. 기왕에 방향성이 정해졌다면 기업이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좋았던 기억은.
▲정부에서는 믿을 만한 관리자는 평가를 얻었다. 업계에서도 고삼석이라면 믿을만한 채널이라는 말이 좋았다. 자연스레 역할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 인사 중에서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도 들었다.
2014년 당시 야당인 민주당 추천으로 상임위원이 됐다. 참여정부 당시 융합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방통위 설치법과 IPTV법을 기획했다. 스스로 초석을 다진 조직의 상임위원으로 일한다는건 대단한 영광이었다. 당시에는 상임위원이 될 줄도 몰랐다. 내 역량을 보고 싶어 지원을 했는데,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90%라는 지지율로 수석 합격한게 기뻤다. 대통령 임명으로 상임위원이 됐을 때는 위원으로 가진 정책입장을 실현시키는데 유리하더라.
-후임자와 정부에 당부하고픈 말은.
▲정부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게 초반에는 부처 칸막이를 없애자고 하지만, 정부가 안정기 들어서면 자신의 고유업무 가지고 장벽이 높게 쳐진다. 부처는 자기업무 중심으로 성을 쌓는 속성이 있다. 누군가는 성을 무너뜨리거나 문을 달아줘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게 장·차관, 국무조정실이다. 협업의 가치가 중요하다. 자기 것을 내려놓도록 국가와 전체 산업 관점이 필요하다.
-당장의 계획은.
▲우선은 단 몇 달이라도 쉬면서 재충전하고 싶다. 에너지가 소진됐다. 방향설정도 해보고 싶다. 대통령 지명 상임위원이 되고 나서는 이전보다 더 바빠졌다. 정무직으로서 매 순간을 단어,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해 생활하다보니 피로가 누적됐다.
책이 나왔으니 강연도 하고, 글도 쓰면서 제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고 싶다. 방통위 상임위원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목소리를 일반 국민과 업계, 정책당국에 소개하는 게 저의 일이다. 최소 1~2개월은 쉬겠다. 이후에 어떤 방식으로든 제게 역할이 주어진다면 그때 고민하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5년 5개월을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일했다. 고맙게 생각한다. 적어도 60세 이전까지는 영리 목적 민간기업으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국회와 청와대, 방통위에서 17년을 넘게 일했다. 소위 '어공'이라고 하는데, 운명적인 이유가 있다고 본다. 조금 더 공익에 봉사하는 게 소명이다. 그 기간 동안 배우며 얻게 된 내 능력은 이미 공공재가 됐다. 앞으로도 공공재 역할에 충실하겠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광주 동신고와 조선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행정관과 혁신담당관으로 만 5년을 근무하며 방송통신융합, 인터넷, 콘텐츠 등 정책업무를 수행했다. 2012년에는 문재인 캠프 미디어·ICT 공약 관련 업무를 총괄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6월부터 3년간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재직했고, 2017년 6월부터는 2년 5개월간 대통령 임명직 상임위원으로 연임해 이달 퇴임을 앞두고 있다. 미디어·ICT 전문가로서 합리적 성품으로 정부와 업계, 여야간 소통 창구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정리=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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