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하나. 내 것이지만 남이 더 자주 사용하는 것은? 정답은 '이름'이다. 이름은 사람이나 사물 또는 현상 등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붙여서 부르는 말이다. 사람에게 붙이는 것은 '성명(姓名)', 법인에 붙이는 것은 '명칭(名稱)'이라고 한다.
성명은 그 사람의 자아(自我)와도 연결된다. 인생을 좌우하는 요소가 된다고 해서 매우 신중하게 지었다. 태어난 연·월·일·시와 음·양 등 사주팔자 및 오행을 따져서 부족한 것은 메워 주고 상극이 되는 것은 피하는 등 다양한 작명법이 연구됐다.
특히 유교 문화권에는 '실명경피속(實名敬避俗)'이라고 본명을 부르는 것을 꺼리는 풍속이 있었다. 어릴 때는 아명(兒名)을 사용하고, 이후에는 자(字)와 호(號)를 많이 썼다. 자는 성인이 되면 사용하는 이름이고, 호는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일종의 별명이다.
호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제약이 없어 한 사람이 수십 개의 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문인이나 화가 등이 쓰는 호는 '아호(雅號)'라고 한다. 아호는 지명을 따서 짓거나 집 이름인 당호(堂號)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했다. 출신 내력이나 성품 등 그 사람의 일부분을 표현한 것으로 보면 된다.
기업이나 기관 등 법인은 대체로 설립 취지나 추구하는 비전 등을 담아 명칭을 짓는다. 특히 정부 기관은 통상 명칭만 보고도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짓는다. 그게 바로 이름이다.
최근 특허청이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박원주 청장은 부임과 동시에 내세운 새 명칭은 '지식재산청' 또는 '지식재산혁신청'이다. 특허청 업무가 크게 늘어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는 시점이어서 명칭도 함께 변경해 정체성을 재정립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저작권 업무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식재산기본법을 소관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반대에 부닥쳐서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자칫 국민의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는 데다 업무 중복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유다. 특허청의 명칭 변경 목적이 역할 재정립에 있다 보니 그럴 수도 있다. 과기정통부나 문체부 입장도 십분 이해된다.
그러나 '지식재산청'이라는 명칭은 이미 세계 트렌드다. 특허청 업무는 특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실용신안, 디자인, 상표 등 다양한 지식 재산을 포괄한다. 이에 걸맞게 명칭을 바꾸는 것이 맞다.
'특허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지식 재산 강국이 점점 감소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영국은 지난 2007년 '지식재산청'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캐나다, 러시아, 호주 등도 이 명칭을 사용한다. 프랑스의 '산업재산청'과 중국의 '국가지식재산권국'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은 특허에 상표권을 붙여 '특허상표청'이라고 부른다. 유럽은 기존 특허청과 별도로 2016년에 상표와 디자인을 담당하는 '지식재산청'을 독립시켰다. 세계 주요국 가운데는 우리나라와 일본만 '특허청'이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미 익숙해진 명칭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또 부처 간 업무에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도록 사전에 조율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래도 지금은 특허청 역할에 걸맞은 새 이름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