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사회에서 나만 잘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통용됐던 '내'가 잘하면 성공한다는 공식은 깨졌습니다. 이제 남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연결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임춘성 '정보통신 미래모임' 회장(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개인, 기업할 것 없이 혼자만의 능력으로 잘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기업도 모든 분야를 잘 하는 곳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플랫폼만을 제공하고 그 안에는 다른 기업 역량을 매개하는 기업이 성공한 것처럼 다른 기업과의 교류, 협업을 통한 연결역량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으로부터 연결역량,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열풍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담=이호준 정치정책부장
-연결역량을 통해 성장한 경험이 있는가.
▲2015년 '매개하라'란 책을 출간한 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많은 기업이 강연을 요청해 다수 기업을 방문했다. 강연을 하러갔지만 오히려 많이 배웠다. 그동안은 대학교수 위치에서 기업인을 빈번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강연을 통해 기업이 자사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기업은 그 어느 곳보다 기술 변화에 민감하다. 기업을 방문하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 그들의 시각을 접하게 됐다. 특히 기업의 정보기술(IT) 분야 요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IT 발달로 전통산업도 IT를 활용하게 됐다. 덕분에 전통산업 경쟁력이 높아졌다. 전통기업은 그 수익 일부를 다시 IT에 투자했다. 이렇게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
IT뿐 아니라 산업 모든 분야에 다양한 선순환 구조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 모든 것은 혼자 대학에서 연구만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을 쓰고 공부를 한 것도 바탕이 됐지만 여러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찾아왔다. 나 또한 타인과의 연결역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렇듯 연결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돈, 권력, 지식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혼자서 차곡차곡 쌓아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시대가 왔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한 연결역량으로 비약적으로 도약할 수 있다.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에 의존하기보다는 남의 역량과 남이 가진 자원, 그리고 남의 시간까지 활용하는 전략과 실행에 집중해야 한다. 연결을 통해 유한한 시간을 무한한 기회로 돌리고, 한정된 자원을 무한정한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 이를 통해 부, 권력,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 흐름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어렵고 중요한 질문이다. '4차 산업혁명'은 학술적인 용어로 보기는 어렵다. 1, 2차 산업혁명 같은 무게감은 없다. 4차 산업혁명은 다보스포럼 슬로건으로 2016년에 선정됐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신설됐다. 덕분에 4차 산업혁명이란 키워드를 모든 국민이 알게 됐다. 4차 산업혁명이 내포하는 의미는 아주 크다. 요즘은 데이터 경제, AI가 부각되고 있다.
아직 과거 인터넷 산업처럼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진 않았지만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AI는 사실 100년이 넘은 기술이다. 그 과정에 AI 기술이 계속 발전했다. 어느 정도 지능화된 AI는 오픈소스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데이터 경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데이터가 있어야 AI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도 국회를 통과하지 않아 걸림돌 있는 게 사실이다. 시대가 급격하게 변하는 만큼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 빠르게 새로운 시대를 대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4차 산업혁명 대응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돼있다. IT 이니셔티브를 다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본다.
-최근의 AI 열풍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우리사회가 놓치는 것은 없는가.
▲국민 사용성에 중점을 두는 AI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굳이 신기술이 아니라 이미 나온 AI 기술을 이용하더라도 사용성에 집중한다면 좋은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좋은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서비스는 외국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즉, 기업과 대중의 '연결'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은 AI, 데이터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미 기술에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에 대한 호응도 높다고 판단된다. AI라고 해서 핵심적인 기술과 데이터 확보만 생각하는 것은 좁은 시각이다.
AI는 이미 어느 정도는 상용화됐다. 크게 보면 약간의 법칙을 집어넣는 것도 AI다. 보일러 온도 맞추는 것도 '룰'을 넣는 것이다. 이런 학습 능력, 알고리즘 개발은 우리가 쫓아갈 수 있다. 많이 알려진 오픈소스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며 나라도 작기 때문에 결집력을 키운다면 빠른 시일 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학생을 가르친다. 과거 학생들과 많은 차이가 있는가.
▲사실 우리 사회는 X세대, Z세대 등 젊은층을 유형화 시켜왔다. 정작 대상이 되는 학생들은 이상하게 생각한다. 지금 학생들이 기존 세대와 다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이전 세대와 나이, 성장 환경이 모두 다르다. 특히 디지털 환경이 다르다. 이들은 디지털 기술을 일상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한 세대다.
연결이 범람하는 초연결사회의 또다른 모습은 개인주의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디지털 기술은 한명, 한명의 개인화를 촉발하기 때문이다. 너무 신인류처럼 그들을 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학 교육도 많이 변해야 한다. 다수 교수가 획일화된 교육을 한다. 디지털에 너무나도 익숙한 세대인 만큼 영상 등 IT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강의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정보통신 미래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요즘 젊은 벤처 기업인, 교수진 중에서도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이들이 있다. 벤처 기업은 2000년 전후에 열풍이 불었고 그 당시 과실을 많이 땄다. 그때와 지금의 벤처 기업은 다르다. 과거에는 기업인들끼리 친목을 다지면서 교류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벤처 기업은 더 개인화된 성향이 강한 것 같다.
교수들은 과거에는 공공성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많았다. 요즘 교수들은 당장의 현안이 없으면 공공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것을 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다. 공익의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영역에 충실한 것이지만 산업 활성화 등 국가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누고, 해결방안을 강구하는 흐름이 끊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든다. 물론 요즘 교수들이 과거보다 더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여유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등록금 동결로 인해 연봉은 큰 변화가 없지만 논문·봉사활동 등 해야 할 일은 더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젊은 연구진이 조금만 더 여유를 갖고 공공을 위한 활동을 펼쳤으면 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발전도 가져올 수 있다. 교수는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산업적 어젠다를 폭넓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수진의 참여가 필요하다. 언론 또한 이를 보도하면서 대중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논의가 폭넓게 확장된다.
나는 정보통신 발전을 논의하는 모임인 정보통신 미래모임에 수십년간 참여하면서 다양한 전문가의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정보통신 미래모임이 이러한 순기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
○임춘성 회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버클리대에서 산업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럿거스대 교수를 거쳐 지금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부터 '정보통신 미래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20여년간 정보통신기술과 디지털 경제가 개인 삶과 기업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에 관해 강의하고 연구했다. 산업정책, 기술경영 전문가로 1000곳이 넘는 기업과 조직을 진단, 평가하고 미래전략을 제안했다.
'매개하라' '멋진 신세계' '당신의 퀀텀리프' '거리 두기' 등 다수 베스트셀러 저자다. 공학과 인문, 역사, 철학, 예술을 넘나드는 독특한 관점과 신선한 접근법을 가진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정리=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