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계약서부터 쓰시죠.”
일본 A 수입차 딜러사에 근무하는 영업 직원에게 차량 구매 조건을 묻자 나온 말이다. 연말 몰려드는 문의가 많아 일일히 대응이 어려우니 일단 계약서부터 작성하자고 했다.
일본 불매운동 여파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차 브랜드들이 할인 카드를 내세워 연말 재고떨이에 돌입했다. 이달까지 재고를 판매해야 연식 변경으로 중고차가 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어서다. 최대 1700만원에 달하는 대규모 할인 공세가 시작되자 주춤했던 일본차 판매도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혼다는 대표 차종 중 하나인 어코드 1.5 터보 모델(3690만원) 재고 물량 800대를 대상으로 연말까지 600만원을 할인해 3090만원에 판매 중이다. 여기에 150만원 상당 서비스 무상쿠폰을 추가해 차량 가격의 총 20%에 해당하는 혜택을 제공한다. 앞서 혼다는 1500만원 상당의 할인 혜택으로 파일럿 재고 물량을 모두 소진한 바 있다.
할인 폭은 닛산이 가장 컸다. 차종과 구매 방식에 따라 최대 1700만원을 지원한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패스파인더(5340만원)의 경우 자사 파이낸셜 구매 시 주유권 1700만원 지원, 현금 구매 시 주유권 1400만원을 준다. 이를 적용하면 현대차 싼타페와 비슷한 360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는 셈이다. 중형 SUV 엑스트레일은 최대 1230만원, 대형 세단 맥시마 최대 300만원, 중형 세단 알티마 최대 370만원 등 주요 차종별로 여러 혜택을 지원한다.
닛산 계열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도 최대 1000만원에 달하는 할인을 제공한다. 주력 세단 Q50은 국산차 보유 고객 대상으로 최대 1000만원을 지원한다. Q30은 300만원 할인해 2000만원대, QX50은 500만원을 할인해 4000만원대 구매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외에도 QX30 600만원, Q60 300만원을 할인하고 있다.
다른 브랜드에 비해 가격 인하폭이 적었던 토요타도 할인전에 뛰어들었다. 토요타는 주력 SUV RAV4 대상으로 500만원을 할인해 판매하고 있다. 뉴 프리우스는 주유권 250만원을 증정한다. 할인이 거의 없던 캠리나 캠리 하이브리드는 200만원을 할인한다. 시에나, 프리우스 프라임, 프리우스 C도 100만~400만원 상당 혜택을 마련했다. 렉서스 역시 LS500 기준 200만원 주유권을 제공하며, 차종별로 저금리 할부와 리스 프로그램, 엔진오일 쿠폰 등을 증정한다.
할인을 시작하자 하향세를 그리던 일본차 판매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1~10월 누적 판매 기준으로 토요타(8508대)는 작년 동기 대비 35.9% 닛산(2438대) 42.1%, 인피니티(1544대) 11.6% 각각 감소했지만, 렉서스(1만882대) 10.3%, 혼다(7262대)는 17.8%로 두 자릿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할인 효과로 아직 집계 전인 11월 판매는 다수 브랜드가 전달보다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차 브랜드들은 연말 할인 판매와 함께 중단했던 마케팅 홍보 활동도 시작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토요타와 닛산 등이 언론 대상 자료 배포에 나섰다. 토요타는 홈페이지를 통해 연말 출시 예정이던 스포츠카 수프라를 소개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해둔 차량을 연말까지 판매하지 못하면 연식이 변경되면서 악성 재고로 남게 되기 때문에 브랜드 입장에서 할인 판매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면서 “유니클로와 같은 일본 대표 브랜드들이 최근 할인 정책을 통해 판매를 회복하고 있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일본차 브랜드들도 영업 정상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